▲휴가를 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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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용 휴가에 대해 금전적 보상이 없었던 몇 년 전에는 회사나 상사의 압박에 의해 서류상으로는 휴가로 처리해 놓고 출근을 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금전적 보상이 생기자 외부의 압박이 없어도 자발적으로 휴가를 사용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꽤 많아졌습니다. 놀랍게도 휴가를 1년에 단 하루도 사용하지 않는 동료들도 있는데, 이들은 자발적으로 금전적 보상을 선택한 경우이거나 그것을 성실함이라 여기는 경우 중 하나입니다.
마지막으로 휴가를 사용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휴가를 낼 사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주변 동료들 중엔 가족이 아프거나 경조사가 있거나 하는 등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만 휴가를 사용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단순히 쉴 줄을 몰라서 휴가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죠. 또한 이래선 안 되겠지만 일부 남성 가장들 중에는 휴가를 내고 집에 있는 것이 더 피곤해서 휴가를 사용하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휴식 혹은 쉼의 가치를 잘 느끼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휴가를 최소한으로 쓰면서 근면하게 일한 자신의 성실함을 스스로 칭찬하기도 합니다. 제가 그냥 별 이유 없이 휴가를 내고 찻집에 앉아 책을 읽거나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있을 때도 있다고 하면 이분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곤합니다. 삶에서 다양하게 누릴 수 있는 유희를 잃어버리고 있기에 그 시간을 일로 채우려고 하는 경향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내년엔 휴가를 전부 사용해 봅시다매년 노동시간과 노동생산성 등에 관한 OECD국가 통계가 발표되면 우리 나라의 장시간 노동과 비효율성에 대해 지적하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기업들도 이와 같은 현상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노동구조를 바꿔보려고 노력을 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과거 오랫동안 이어져오는 성실함에 대한 생각을 넘어서기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현재의 경쟁적 인사평가 제도 하에선 위와 같은 통계 수치를 개선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직장에서 휴가는 당연히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 중의 하나입니다. 상사나 동료의 눈치를 보거나 금전적 보상의 유혹으로 인해 혹은 경쟁의 압박으로 인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빼앗기거나 포기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암묵적으로 휴가 사용에 압박감을 느끼게 하는 기업들을 제재할 법적 조치도 필요하겠지만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기업뿐만 아니라 노동자들도 '비효율적인 부지런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머지않아 보편화된 인공지능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 텐데 이런 시대에도 노동현장에 오래 머무는 것을 미덕이라 할까요? 많은 것을 기계가 대체하게 될 시대에 더 중요해 질 것은 창의성입니다. 창의성을 업으로 삼는 여러 예술가들은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 중요한 것은 '잉여'의 시간 혹은 '멍때리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즉, 집중하던 것으로부터의 단절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과거엔 고단한 몸을 쉬게하는 휴가가 필요했다면 이젠 생각을 위한 휴가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아직은 우리 나라 노동 현장이 마음 편히 휴가를 사용하기엔 어려운 상황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변화는 기존의 것에 아주 작은 틈을 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다. 자리를 비우는 것이 눈치보이고 부담스러운 것이지만 가끔씩은 그 부담을 고스란히 안고 아무 이유 없이 그냥 휴가를 써 보는 겁니다. 앞으로 변화될 미래에 대비한다 생각하고 2017년 새해엔 가진 휴가를 전부 사용해 보는 것을 목표로 삼아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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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지치지 말기를. 제발 그러하기를. 모든 것이 유한하다면 무의미 또한 끝이 있을 터이니.
-마르틴 발저, 호수와 바다 이야기-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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