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야자수
석문희
아직 서귀포에서는 한창 가을의 상징인 까마중과 코스모스, 개미취와 함께 봄의 상징인 별꽃나물, 쑥이 파릇파릇 끊임없이 새싹을 내밀고 함께 자라면서 겨울을 나고 있는 중이다. 제대로 된 겨울 추위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지금 겁도 없이 새싹을 내밀어서 어쩌자는 것인지. 물론 열대의 상징인 야자수들도 여기에 가세를 한다.
계산이 없는 식물이 지구에서 인간보다 더 긴 역사를 가지고 번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아마 계산을 잘 하는 인간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날이 오더라도 식물은 아무런 계산없이 번성하리라.
요며칠 기다리던 비가 제법 왔다. 그래서 어제는 짬을 내어 남편과 제주에서 가장 높은 폭포로 향했다. 단, 비가 올 때만 가장 높은. 좀더 정확히는 '충분한 양의 비가 오고 난 뒤 강수량이 풍부할 때만 물이 떨어지는 제주에서 가장 높은 자연폭포'가 되시겠다.
그렇다. 엉또 폭포는 비가 오고 난 뒤 이따금 제주에서 가장 높은 폭포가 되지만 평소에는 폭포가 아닐 때가 많다. 그냥 꽤 높은 절벽처럼 보일 뿐이다.
우리처럼 조금의 폭포수라도 볼 수 있을까 기대를 했던 사람들이 꽤나 있었나 보다. 외진 산길을 사람들이 적잖이 오간다. 그러나 이틀 정도 내린 겨울비로는 어림도 없었던 것일까. 엉또폭포는 폭포가 아니라 절벽인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제주에서 가장 높은 폭포구경은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