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동구릉 내에 있는 선조 왕릉 입구의 홍살문. 홍살문 안에 선도비각이 보이고, 왼쪽에 정자각이 보인다. 선조 왕릉은 정자각 왼편 뒤에 있다.
정만진
선조 왕릉은 구리시 동구릉로 197의 '구리 동구릉'(아래 동구릉) 안에 있다. 동구릉(東九陵)은 동쪽에 있는 아홉 기의 왕과 왕비의 무덤이라는 뜻이다. 이때 동쪽은 서울의 동쪽을 의미한다. 예종(8대)과 숙종(19대) 등의 능이 있는 '고양 서오릉'과, 인종(12대)과 철종(25대) 등의 능이 있는 '고양 서삼릉'에 서울의 서쪽을 가리키는 서(西)가 붙어 있는 것도 이와 같다. 따라서 서울 시내에 각각 있는 태종(3대)의 헌릉, 성종(9대)의 선릉, 중종(11대)의 정릉, 명종(13대)의 강릉 등에는 동서남북 표시가 붙어 있지 않다.
이름이 말해주듯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조선 왕릉'의 일부이자 국가 사적 193호인 동구릉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왕릉 집합지이다. 물론 일반인의 평범한 묘가 아니라 왕과 왕비 등의 무덤인 까닭에 이곳 능들은 따로따로 숲속에 대단한 묘역을 거느린 채 웅장한 위용을 뽐내고 있다. 그 탓에,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을 비롯하여 문종(5대), 선조(14대), 현종(18대), 영조(21대), 헌종(24대) 및 여러 왕후들 등의 능을 빠짐없이 참배하려면 '수박 겉핥기'로 다녀도 세 시간은 족히 걸린다.
오늘은 임진왜란 유적지 답사여행 중이므로 선조의 능을 찾아간다. 선조의 능은 동구릉 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구리 동구릉'에 있는 선조 왕릉을 찾아서동구릉 주차장에 도착하여 매표소 쪽으로 다가서면 '朝鮮(조선) 太祖(태조) 高皇帝(고황제) 詩碑(시비)'가 서 있다. 시의 제목은 '登白雲峯(등백운봉)'으로, 우리말로 바꾸면 대략 '백운봉에 올라' 정도가 되겠다. 이성계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자신의 거대한 포부를 4행 한문시에 담아서 보여준다.
'引手攀蘿上碧峯 손 당겨 댕댕이덩굴 휘어잡고 푸른 봉우리에 오르니一庵高臥白雲中한 암자가 흰구름 속에 높이 누워 있네若將眼界爲吾土만약 눈에 들어오는 세상을 내 땅으로 만든다면楚越江南豈不容초월 강남인들 어찌 받아들이지 않으리'이성계 시비 바로 옆에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록 안내비가 있다. 비에는 '조선왕릉(동구릉)은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세계유산 조선왕릉은 조선 시대 왕과 왕비의 능(40기)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담은 독특한 건축 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신성한 공간이며 지금까지도 이곳에서 제례가 이어져 오는 살아 있는 문화유산입니다. 등재일 2009년 6월 30일'이 새겨져 있다. 간략해서 좋다. 욕심이 지나쳐서 답사자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잔글씨를 빽빽하게 써넣어둔 곳도 많은데, 읽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점에서 이곳 안내비는 현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