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성 성곽
정만진
아직 당시 모습 잘 간직하고 있는 오천성게다가 오천성은 지금도 지난 시대의 멋진 모습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안내판은 '근대에 들어 도로 개설이나 호안 매립 등으로 인하여 훼손된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충청수영성은 나머지 성지(城址)뿐만 아니라 그 주변 지형이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군사 목적에 마련된 충청 지역 수군 지휘부로서 충청도의 수군 편제와 조직, 예하 충청 지역 해로(海路) 요처(要處)에 배치되었던 수군진과의 영속 관계 등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으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다'라고 해설하고 있다.
이 해설에 가장 고개가 끄덕여지는 때는 '충청수영 진휼청(賑恤廳, 유형문화재 136호)' 건물 뒤편에서 성벽 위를 밟고 서는 순간이다. 이곳이 가장 직접적으로 강물을 내려보는 지점으로, 아찔하다. 다리가 아찔하고, 머리가 아찔하다. 내륙이나 대도시에서 사는 현대인으로서는 도무지 맛볼 수 없는, 바닷가 강변 성터에서만 눈에 담을 수 있는 아찔한 호사다.
그러고 보니, 진휼청 건물이 유난히 쓸쓸해 보인다. 안내판은 '조선 시대 충청수영성 안에는 많은 영사(營舍)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이곳의 추정(推定) 진휼청을 비롯해 객사(客舍)와 삼문(三門)만이 남아 있다'라고 했다. 세월의 무게와 시대의 변화를 이기지 못해 다들 사라졌는데, 조선 시대에 '흉년에 충청수영 관내의 빈민 구제를 담당하던 곳'이었던 진휼청이 혼자 남아 오늘날에는 멀리서 온 나그네의 고적함을 달래주고 있다.
수영 폐지 이후 일반인 살림집으로 쓰였던 진휼청충청수영은 1896년(고종 33)에 철폐되었다. 그 이후 진휼청은 일반 백성의 살림집인 민가로 쓰이다가 1994년 들어 토지 및 건물을 매입, 보존되고 있다. 집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대청, 온돌방, 툇마루, 부엌 등이 있다. 이 건물에 진휼청이라는 현판을 단 것은 정확하게 전해지는 기록이 없어 충청수영 고지도(古地圖) 등에 나타나 있는 건물 배치로 미루어 추정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