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 법 개정을 촉구하는 아버지 허영춘 님의 1인 피켓시위. 피켓을 목에 건 분이 허영춘 님이다.
고상만
"아버지. 제가 참 궁금한 게요. 어떻게 지난 33년간 그렇게 싸울 수 있으셨는지 싶어요. 1984년에 장남 잃고 지금까지 진상규명을 위해 싸워 오셨는데 도대체 그 힘이 어디에서 나오시는지. 사실 어머니들은 모성애 때문에 절대 포기하지 못하지만, 통상의 아버지들은 하다 하다 안 되면 절망에 빠져 자포자기하는데 아버지는 그러지 않으시잖아요?" 그렇게 해서 듣게 된 허원근 일병 아버지의 사연은 참 슬펐다. 시작은 1984년 4월 2일, 아버지의 꿈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잠을 자고 있는데 꿈속에서 장남 허원근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군 입대 후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들이었다. 4월 3일에 첫 휴가를 받아 나온다던 아들이 갑자기 꿈에 나타났으니 아버지는 당연히 기뻤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자신을 보며 '아버지'라고 절규했다고 한다.
잊을 수 없는 그 사건, 그리고 전해진 비보아들의 목소리에 아버지는 놀라 꿈에서 깨었다고 한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시계를 보니 시각은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후 아버지는 이상하게 마음이 불안했다고 한다. 머릿속에서 장남이 절규한 '아버지' 소리가 내내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내일이면 집에 온다고 했으니 그저 개꿈이겠지 싶으며 위안 삼던 그때였다. 4월 2일 밤 10시경, 마을 이장 집에서 전보가 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듣게 된 소식, 아들의 사망 소식이었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저 빨리 아들의 부대로 달려가 아들의 생사를 직접 확인해야겠다는 생각 외엔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전남 진도를 출발하여 낯선 강원도 화천까지 내달려 도착해 보니 시각은 4월 3일 아침이었다는 것이다. 무작정 검문소에서 사망한 군인 부대를 물으니 안내를 해주어 해당 부대에 도착하니 아들이 연병장 담벼락 아래 놓은 탁자 위에 눕혀 있었다고 한다.
사실 그때까지도 아버지는 아들 허원근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다고 한다. 장남으로서 늘 아버지를 도와 집안일을 거들었던 아들. 착하며 성실했고 공부도 매우 잘해 집안의 기대를 받았던 아들이었기에, 그런 아들이 죽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아들이 지금 저 탁자 위에 숨진 채 누워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누군가가 덮여있는 흰 천을 벗기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현장을 지키고 있던 군인들은 아버지에게 "군의관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막아섰다고 한다. 정말 내 아들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으나 막아서는 그들 앞에서 아버지는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한참을 기다리니 오후가 되어서야 군의관이 도착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내 벗겨진 흰 천 안에서 드러난 모습, 아버지는 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믿고 싶지 않았던, 믿을 수 없었던 그 사실, 내 아들 허원근이 거기에 숨이 끊긴 채 누워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잊을 수 없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고 한다.
숨진 아들 허원근의 눈이었다. 아들이 두 눈도 감지 못한 채 숨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 순간 아버지는 아들의 눈에 손을 대며 마음속으로 빌며 쓸어내렸다. 훗날 아버지는 이때 자신이 한 아들과의 약속을 여러 탄원서에 적었다. 특히 1984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에게 보낸 탄원서에서 아버지는 그 마음을 이렇게 적고 있었다.
"나는 내 아들의 영전에서 꼭 불명예를 씻어 너의 영혼을 잠들게 하겠다 하고 다짐했습니다. 지하에서나마 (아들이) 편히 잠들게 하여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