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가옥궁사들이 살던 고구려가옥
이윤옥
고마신사는 고려(高麗)씨 자손이 대대로 궁사(宮司)를 맡아온 일본에서 보기 드문 신사다. 고려씨계도에는 약광의 후예가 걸어온 길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려신사는 14대인 일풍(一豊, 996년) 시대에 대궁이란 칭호를 받아 일본 대사원의 하나로 인정받게 되었고 22대인 1146년까지 대궁사라는 칭호로 불리었다.
이후 26대까지는 고구려인 자손끼리만 혼인하다가 27대 풍순(豊純, 1242년) 때에 고구려인이 아닌 가마쿠라 막부를 연 미나모토(源賴朝) 집안의 딸과 혼인을 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막부의 후원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내 권력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어 1352년에는 고려씨 가문의 토지가 몰수되는 등 한때 폐망의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이후 행고(行高) 때에 "우리 가문은 수험도이므로 앞으로 전쟁에 참가해서는 안 된다"라는 선언을 하고 싸움으로 일세를 풍미하던 사무라이 정권에서 중립을 유지했다. 수험도(修験道, 슈겐도)수란 일종의 재래종교로서 일본 고유의 신앙이다. 7세기 역행자(役行者)에 의해 창시된 재래종교로 각지의 영산을 수도장으로 삼아왔으며 고려씨족들은 헤이안 시대 말부터 명치 때까지 34대에 걸쳐서 수험도를 신봉하면서 영산기도들을 통해 많은 사람을 구제한다. 하지만, 1868년 명치유신에 의해 수험도가 금지되자 고마신사의 신관으로 자리 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고려씨들은 38대부터 교육에도 힘써 자신의 집을 서당으로 활용하여 마을 사람들을 교육했다. 특히 56대손인 고려대기(高麗大記)씨는 메이지 초기 근대 학제가 공표되자 고려교육 심상소학교를 설립하여 초대교장이 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