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하이델베르크 풍경. 저 수많은 일터 중에서 제 한 자리는 있겠죠?
진실애
평생 익숙한 시공간인 대한민국 사회와 더불어 얽히고 설킨 모든 관계를 떠나 낯선 곳에서 이방인으로 살아보는 것이 인생 서른의 꿈 중의 하나였다.
평소에 흠모했던 나라, 독일을 선택하여 이 곳에서 살아온지도 어언 1년여의 시간이 지났다. 낯선 곳에서 지내는 동안 문화적으로 다른 것들이 몸으로 훅 체감되는데 일단 새로운 환경이 주는 깨달음은 초기 정착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한다. 이것이 바로 낯선 곳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20대 시절 파란만장한 대학 생활과 시민단체 그리고 대학원까지 아등바등 서울살이 10년을 마감하고, 새로운 꿈을 향해 오자니 내 두 손과 더불어 통장에 남은 거라곤 하나 없었다. 그래서 하던 일을 관두고 고향으로 내려가 출국 전 세 달(뼈 빠지게) 자금을 모아서 독일에 오게 된 것이다.
부모님은 말하셨지. 네가 원하는 것, 마지막으로 한다 생각하고 맘 먹었으면 잘 해보라고. 아주 독립적(?)으로 말이다. 그 말씀의 의미가 무언지 그 땐 몰랐지... 적금 깨고, 실업급여 모으고 내가 피와 살같이 아끼는 책 150여만 원어치 팔았다. 그리하여 이곳에 왔다. 초기에는 이것저것 지출이 많기도 하거니와, 경제 감각이 없어서 매일같이 이것저것 뭘 사먹기도 사먹었더랬다(인건비가 포함되는 외식이 가장 비싸다). 가계부를 돌아보니 학원비만큼이나 사먹었다. 모아온 돈이 바닥 나기 전에 알바를 구하고 조만간 재정적 자립을 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지지난 달 차질이 생기는 바람에 계획했던 기간보다 한두 달이 앞당겨진 시점에 당혹스러움을 맛보기도 했다.
하루는 자신감 넘치다가, 다음 날은 우울해서 바로 귀국해야지 하는 생각도 여러 차례 그저 돈이 떨어지면 돌아가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내 아무리 천국에 있다한들, 안정적인 의식주의 일상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다음의 무엇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겠는가. 한국에 있었으면 부모님이든 친척이든 친구 선후배든 비빌 언덕이 있었건만, 여기서는 말 그대로 학원비 내고 방세에 시험비 등록에 교통권 끊고, 장보고 휴대폰 충전하고 등등의 먹고 살고 잠자고 하는 그 촘촘한 일상의 그 모든 것이 정말 일이다. 일!
한 번 살아보고자 하는 것? 왜?사실 진학을 꿈꿀 수도 어학 코스를 끝까지 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나는 정말 한 번 '살아보고 픈 생각' 그것만이 가장 간절했다. 너무 그간 '목표'에 매인 삶이어서, 이번엔 목표 없이 한 번 흐르는 대로 가보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내 전공에 이어서 공부를 하기엔, 너무 오랜 지리한 과정이기도 하고 모국어로 풀어내기에도 여간 쉽지 않은데, 외국어로 그걸 한다는 건 상상만 해도 내게 너무 고단한 일이다. 사실 책상에 앉아있는 것보다도, 사람을 만나고 몸으로 경험하며 배우고 깨닫는 공부가 내게는 무엇보다 확실한 편이라서 나는 그 편을 택한 셈이다.
아무리 내가 이 곳에서 오랜 시간 정착한들 나는 이 사회에서는 온전히 섞일 수 없는 이방인이기에,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살아보고 싶기도 했다. 또 이방인으로서 살면서 겪을 그 모든 것이 사회를 평가할 수 하나의 '창'이 되기 때문에 그간 독일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듣고 읽어 왔던 그 모든 것을 실제로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그것은 어떤 '가능성'을 보고자하는 것이었으며, 인간이 이루는 사회에서 그것이 가능하다면 한국 또한 그럴 수 있다는 작은 기대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이 곳에서 일상을 이루며 사는 모든 일이 나에게는 하나의 설문이고, 글쓰기의 작업이고 좀 더 관찰해보고 싶은 흥미거리다. 낯선 이를 대하는 태도, 물건을 사고팔 때의 제스처들,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시스템들, 난민을 생각하는 이들의 여러 모습들...
그리하여 그간의 나의 경험을 차례대로 풀어보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그 사회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노동' 이라 생각한다.
노동이라는게 무엇인가. 자아성취를 위한 수단?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미 그 빛깔 고운 이유는 사라진 지 오래다. 어쨌거나 돈을 벌기 위해 임금을 가지고 사람을 고용하는 '고용주'과 또 그 돈을 벌기 위해 그 구조 안에 기꺼이 유입되는 '노동자'와의 관계를 엿보는 것이 사회 전체를 이루는 시스템의 중요한 하나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쩌면 노동은 그 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살펴볼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문제들이 고용주와 노동자간의 수평선과 같은 의견 불일치로부터 비롯한 것 아닌가. 고용주가 사람보다 자본을 앞세워 그 것으로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돈 앞에 장사없다.'는 속담처럼 독일의 민낯을 확인하고 싶다는 욕망도 없지 않았기에, 나는 꼭 '일'을 해보고 싶었다.
사회적 위치로만 보았을 때 나는 '을 중의 을' 아닌가. 언어실력으로나, 외국인로서의 신분으로나 더군다나 힘도 세지 않고 체구도 작은 아시아 여자사람... 이런 위치에 있는 내가 노동 저변을 통해 독일사회 속으로 들어갈 때 마주하게 되는 풍경과 태도는 어떤 것들일까. 그것을 통해 솔직하고도 적나라하게 이 사회를 볼 수 있다 생각하니 무언지 모를 기대감이 벅차오른다.
허나 워킹홀리데이로 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장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닿을 수 있는 일자리는 한식당이나 한-독 배송대행 업체의 고객관리 및 상품포장과 같은 일이다.
나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걸까? 과연 가능한 일인걸까?
내가 한국에서 경험한 이력으로는 도통 닿지 않는 선이다. 무엇을 과대포장하고 과소포장해서 이력서를 만들어야 할까.
과연 이런 내가 이곳에서 '노동'할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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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국문학+시민정치문화를 전공했고, 현재는 독일 중서부 뒤셀도르프에서 유아 청소년 교육 직업학교를 졸업하고 아동기관에서 재직중입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인간의 일에 관심이 많고, 더 나은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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