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 선언을 마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원순 서울시장이 26일 오전 대통령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여야의 주요한 대선주자로는 '불출마 선언 1호'인 셈이다.
박 시장은 이날 국회 정론관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에서 "정권교체 이후 민주개혁세력의 단결을 통해 새로운 정부가 성공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참여연대'와 '희망제작소'의 산파였던 박 시장은 2011년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선으로 제도권 정치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여권의 '잠룡'이었던 정몽준 전 의원을 꺾고 민주당 계열 후보로는 처음으로 민선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했다.
2015년 메르스 정국에서 지지율 22.5%로 1위 기록2012년 정권교체에 한 차례 실패한 만큼 야권의 차기 대선주자로서 박 시장의 인기도 치솟았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대한 대처를 놓고 박근혜 정부와 정면충돌했던 2015년에는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1위에 올랐다. 그해 6월 15~19일 여론조사회사 리얼미터 조사는 박 시장(22.5%), 김무성 의원(20.1%), 문재인 전 대표(15.6%), 안철수 의원(7.6%)의 순이었다. 지역별로는 서울(24.6%)과 경기·인천(26.1%), 광주·전라(36.9%), 세대별로도 20대(29.1%)와 30대(34.7%), 40대(24.4%)에서도 1위에 오르는 등 야권 지지층에서 '박원순 대세론'이 형성되는 듯했다.
그러나 대선 레이스의 결정적인 변곡점은 2016년 4.13 총선이었다. 문 전 대표가 추대한 '김종인 비대위'가 민주당을 원내 1당으로 끌어올리고, 문재인이 영입한 정치신인들이 수도권 등지에서 대거 당선되자 '야권 총선 승리'의 공이 온전히 문 전 대표에게 쏠린 것이다. 총선이 끝나자 문 전 대표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함께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
민주당은 박 시장의 주요 지지기반인 서울 총선에서 압승 했지만, 그의 참모로는 박홍근·기동민 의원만이 당선됐다. 박 시장을 돕던 한 인사는 "작년 말 '문재인-안철수-박원순' 연대 얘기가 나왔을 때 '박원순 정치'의 공간이 열리는 듯했는데, 안철수가 탈당하면서 박 시장이 중앙정치에서 역할을 할 기회도 함께 사라졌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반면, 현실 정치에서 한발 물러나 시정에 전념했던 박 시장에게는 본격적인 위기 국면이 시작됐다.
그해 5월 30일 지하철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정비 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10대 직원이 불의의 사고로 숨진 사건은 박 시장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박 시장은 여야 모두로부터 사고에 대한 관리 책임을 추궁당했고, 박 시장 지지율은 6.7%까지 떨어졌다(리얼미터 2016년 6월 1주차 주간집계).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박 시장 참모들사이에서는 "아직 해볼 만하다"는 낙관론이 많았다. 박 시장 주변에서는 "인구 1000만 도시의 시장이다. 심야버스, 서울역 고가도로 보행특구, 공공자전거 '따릉이' 등의 역점 사업들로 '행정가 박원순'의 면모가 제대로 알려질 것"이라는 얘기들이 많았다. 박원순 캠프도 작년 8월부터 진용을 갖추기 시작했다. 한때 박 시장을 도왔던 임종석(전 정무부시장), 권오중(전 정무수석) 등이 가을 이후 문재인 캠프와 안희정 캠프로 각각 자리를 옮겼고, 시민사회단체 출신들이 이들의 빈자리를 채웠다는 후문이다.
탄핵·촛불시위 정국에서 이재명에 밀려작년 10월 말부터 시작된 박근혜 탄핵·촛불시위 정국은 박 시장의 대권 레이스에서 또 하나의 분기점이 됐다.
문재인, 반기문, 안철수에 이어 꾸준히 4위권을 유지해왔던 박 시장이 11월 초부터는 이재명 성남시장 돌풍에 밀려 5위로 주저앉은 것이다. 이 시장은 SNS와 언론 인터뷰 등을 적극 활용해 야당 지지층이 좋아할 만한 이슈에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면서 이미 10월부터 박 시장과 여론조사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박 시장은 12월 들어서는 민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 대표나 안희정 충남지사에게까지 밀려 6위까지 추락했다. 12월 15일자 리얼미터 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3.9%까지 떨어졌다. 박 시장의 한 참모는 "누구보다도 먼저 '박근혜 퇴진'을 외쳤고, 광화문 촛불집회를 적극 지원하고 참석도 자주했던 박원순이 이재명에게 밀린 것은 지금도 수수께끼"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박 시장은 지난 12일 민주당 출입기자단과의 오찬에서 "촛불 국면에서 이재명 시장이 치고 올라갔는데 아프지 않냐?"는 <오마이뉴스> 기자의 질문에 "물론 아프죠. 그러나 내 삶의 궤적이 차곡차곡 쌓여있으니 언젠가는 올라갈 것"이라고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해가 바뀌자 박 시장은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박 시장은 1월 8일 전주 기자간담회에서 "문재인 전 대표는 청산돼야 할 낡은 기득권 세력"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날 "민주당 기득권의 줄세우기는 심각한 수준이다. 차기 서울시장에 출마할 후보까지 정해놨다는 이야기가 들린다"는 말도 했다. 박 시장의 작심 발언은 큰 파장을 일으켰지만, 캠프의 핵심 의원들도 뒤늦게 알 정도로 '보안'이 유지됐다.
박 시장은 당일 <오마이뉴스>에 "오늘 전주에 갔더니 보건복지부 장관에 (친문 성향의) 아무개가 내정돼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리더라. 내가 겪어보니 안철수(가 문재인하고 결별하고) 나간 것이 이해되더라. 문 전 대표가 이러면 안되는 것 아니냐?"고 서운함을 계속 표시했다.
두 사람은 사법연수원 동기로, 정치권에 몸 담기 전에는 꽤 가까운 친구사이였다. 문재인 캠프에서는 "서울시장-보건장관 얘기는 당사자들의 자가발전이거나 밑도 끝도 없는 루머다. 문재인은 자리 약속하며 사람 쓰는 스타일이 아니다"는 반응이 나왔다.
박 시장의 강성 발언 배경을 놓고 시민단체 출신의 참모들이 2선 후퇴하고 네거티브 캠페인에 능한 여의도의 전략가 그룹이 투입됐다는 얘기도 나왔다. 민주당 사정에 정통한 인사는 "박 시장의 부름을 받은 그룹은 기본적으로 '반문재인' 성향은 강하지만, 작년 8월 전당대회에서 가장 늦게 출마한 이종걸 의원을 2위로 끌어올린 전과가 있었다. 박 시장이 이들의 기본 실력을 신뢰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12일에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촛불광장에 수만 개의 투표소를 설치해서 누구나 자유롭게 공동정부 대통령 후보 선출에 참여하게 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그날 낮 민주당 출입기자단 오찬에서는 촛불경선의 기술적·현실적 어려움을 지적하는 질문이 쏟아졌지만, 박 시장은 "왜 안 된다고만 생각하냐"고 반문했다. 배석한 기동민 의원이 보다 못해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우리도 인정한다. 오늘은 촛불정신을 계승하자는 제안 정도로 이해해달라"고 진화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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