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럼보>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정규재 tv'와의 인터뷰에서도 박 대통령은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진짜 알지 못하는 사실은 블랙리스트의 존재 자체가 그 얼마나 잔인무도한가 하는 점일 것이다. 지난해 개봉한 <트럼보>(2015)는 미국에서 매카시즘이 횡포하던 시절, 이 블랙리스트가 창작자의 영혼은 물론 생활까지 처절하게 갉아먹었던 현실을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톤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좌파'라는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지 않았던 시나리오 작가 달튼 트럼보는 그로 인해 1년 간 투옥되고, 그 이후에도 일감을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생계를 위해 가명으로 시나리오를 쓸 수밖에 없었다. 생계를 위해 무려 11개나 썼다. <스파르타쿠스>도 그 중 한 작품이다. 트럼보가 가짜 이름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로마의 휴일>이었다.
40년 뒤, 그는 본명으로 아카데미상 평생공로상을 수상한다. <트럼보>의 명장면이다. 그 무대에서 트럼보는 "악마의 시절에 각자 처한 상황은 악마의 손길을 피할 수 없었다"며 "우리 모두가 희생자"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지만, 그건 희생자로서 보여줄 수 있는 관용의 최대치였을 것이다. 그는 옥고를 치러야 했고, 친구를 잃어야 했다. 궁핍한 생활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창작의 자유를 송두리째 빼앗겼었다. <트럼보>는 그게 '표현의 자유'의 억압이고, 매카시즘이란 광기의 폐해임을 분명히 한다.
박 대통령은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박 대통령에게 예술이란, 대중문화란, 창작이란 그저 '딴따라'들의 행위에 다름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시계를 유신 시절로 되돌린 블랙리스트가 횡행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시절부터 '퍼스트 레이디'로 살았고, 물려받은 유산으로 생활했던 박 대통령이 "밥줄이 끊긴다"는 상황을 이해했을 리 없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해외 'K-POP' 공연에 아이돌 그룹 등을 초청하는 것을 그토록 즐겼다고 한다. 반면 <그때 그 사람들>이나 <변호인>과 같은 특정 영화는 그리도 싫어했다고 한다. 과연 박 대통령에게 '예술'을, '예술가'들의, 창작자들의 입장을 공감할 여력이 있었을까. 단순히 의전의, 통치 행위의 일환이지 않았을까. 또 정확히는 모르겠다. 한국 드라마는 그토록 즐기셨다고 하니. 박 대통령이 신드롬을 일으키며 최근 종영한 <도깨비>는 보셨을까 궁금해지는 설 연휴다.
<그때 그 사람들>, 다시 봐도 '박정희 암살'이 불경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