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보낸 사계, 나를 만나다

정유년 새해, 다시 시작하고 싶다면

등록 2017.01.31 11:14수정 2017.01.3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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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다. 가족이 건강할 때, 고민을 들어줄 친구가 있을 때 행복하다. 행복은 목적이 아니고 과정이다. 여행을 준비할 때, 좋아하는 일에 몰입할 때 행복을 느낀다. 그러니 행복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사계절이 있는 대한민국에 사는 것도 큰 행복이다. 색감 뚜렷한 계절의 변화가 있어 지루하지 않고, 식감 다른 제철의 진미를 만끽할 수 있어 좋다. 그런데 극한을 넘나드는 사막과 오지에도 사계가 있다.


사막하면 대개 황금 빛 모래 언덕이나 오아시스의 여유를 떠올린다. 석양에 비친 낙타 무리의 실루엣을 상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불을 뿜는 열사와 모래폭풍이 기다리고 있는 사막은 그리 낭만적이지 못하다. 나는 이런 환경 속에 몸을 던지는 사막 여행을 10년 넘게 멈추지 못하고 있다. 모험을 좇는 마니아들도 여전히 자신의 목표와 포부를 품고 사막을 향하고 있다. 도전의 의미가 무엇이든 사막과 오지로 뛰어든 선수들은 반드시 사계를 거쳐야 한다.

겁 없는 도전의 시작 사하라사막에서
겁 없는 도전의 시작사하라사막에서김경수

행진 외로워도 외로울 틈이 없다
행진외로워도 외로울 틈이 없다김경수

 # 경계 境界

미지의 땅, 상상 속의 대지, 척박한 대자연으로의 도전은 일상의 틀을 벗어나면서 시작된다. 현관문을 나서고 도심을 벗어나야 한다. 국경을 넘고 산야를 건너야 한다. 중국 서역 혜초 스님의 마지막 구법지 타클라마칸 사막은 찾아가는 여정 자체가 모험이고 도전이다. 문명세계를 떠나 지구 속 또 다른 행성으로 들어서는 길목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긴장과 흥분이 교차한다. 

그런데 그 길은 외롭다. 남이 가지 않는 길이기 때문이다. 경계를 넘기 위해서는 난관도 따른다. 부시맨의 고향 나미브 사막은 인도양을 질러 검은 대륙 아프리카 끝단까지 가야 한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지만 가족의 동의가 필요하다. 주변의 비아냥도 감수해야 한다. 불가능이란 시도하지 않은 자의 변명이다. 도전하고 싶다면 먼저 경계의 벽부터 허물어야 한다.

길이 되었다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길이 되었다우유니 소금사막에서김경수

동행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동행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김경수

 # 관계 關係


인간은 어디서든 혼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대자연도 인간과 함께 숨 쉰다. 혈혈단신 볼리비아의 광활한 우유니사막 한가운데 떨어져 점 하나가 되어도 외롭지 않다. 타는 태양 볕 아래서 손을 내미는 선수와 한 모금 생명수를 망설임 없이 나눈다. 길도 없는 캄보디아 정글에서 뒤쳐진 선수에게 파이팅을 외치고 낯선 이에게 힘을 얻는다. 시각장애인의 눈이 되어 휘몰아치는 고비사막의 모래폭풍을 함께 뚫기도 한다. 

인도 뮤나의 밀림에서 한 밤을 보내다 흙바닥에 벌렁 누우면 별무리에 갇혀 대자연과 하나가 된다. 그러니 외로워도 외로울 틈이 없다. 천신만고 끝에 캠프에 들어와 자신의 무용담을 혼자 겪은 듯 자랑스레 늘어놓고 금세 위로 받는다. 진심어린 마음으로 격려하고 격려 받는다. 내일의 여정을 함께 걱정하는 건 사막이나 일상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희비의 공존 미국 그랜드캐니언 협곡에서
희비의 공존미국 그랜드캐니언 협곡에서김경수

나는 달린다 호주 울룰루에서
나는 달린다호주 울룰루에서김경수

 # 한계 限界

레이스가 계속될수록 선수들은 피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을 겪는다. 호주 대륙을 달리다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하중에서, 물집의 고통에서, 체력의 고갈로 한계를 느낀다. 까마득한 모래산 빅듄과 맞닥뜨리면 오르기 전에 압도되어 또 다른 한계를 맞는다. 한계에 다가설수록 대자연과 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끝없는 터널은 없다. 한계가 두려웠다면 나는 사막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한계 앞에 주저앉은 자와 일어선 자의 희비는 극명하다. 그랜드캐니언에서 나는 죽음의 문턱을 봤다. 밤새 추위와 공포 속에 방향을 잃고 흐느적거렸다. 일어서지 못한 자는 그곳이 한계이고, 일어선 자에게 그 한계는 경계일 뿐이다. 한계는 기분 좋은 불편함이다. 한계를 넘어서면 인생의 반전뿐만 아니라 행복도 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이스의 끝 부탄 파로계곡의 호랑이 둥지에서
레이스의 끝부탄 파로계곡의 호랑이 둥지에서김경수

부시맨의 고향 나미비아의 피쉬리버 캐니언 전경
부시맨의 고향나미비아의 피쉬리버 캐니언 전경김경수

 # 설계 設計

흙먼지와 땀으로 뒤범벅이 된 채 사하라 사막 빅듄 위에서 맞는 바람은 올라선 자에게 주어지는 작은 보상이다. 한 눈에 사하라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매미가 가을 단풍을 알 수 없듯 오르지 않고 정상에서 펼쳐질 신천지를 상상할 수 있을까. 건너편 광야를 볼 수 있는 건 오른 자의 특권이다. 가야할 좌표가 시야에 들어오고 다음 CP로 향할 동선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넘어선 자의 환희는 비록 짧지만 달콤한 여운 후에 새로운 목표를 떠올린다. 나는 중국 고비 사막을 넘고 히말라야 임자체와 부탄의 파로 계곡을 넘어 남미 칠레의 아타카마사막을 건넜다. 넘어서지 못한 자는 영원히 한계 너머를 그리워할 것이다. 더 멀고 더 깊고 더 높은 곳으로의 도전도 한계를 넘어선 자만이 웃으며 상상할 수 있는 전유물이다.

환희 아타카마사막 레이스의 대미
환희아타카마사막 레이스의 대미김경수

히말라야 임자체 5850m 설선면 경계에서
히말라야 임자체5850m 설선면 경계에서김경수

도전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의 벽, 주변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고정관념을 뛰어 넘어야 한다. 도전하지 않으면 성공도 실패도 없다. 험난한 여정을 두 발로 밟으며 부대낌 속에 울고 웃지만 선수들은 여전히 한계로 향한다. 한계의 목전에서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고 대범하게 거듭나기도 한다. 주저앉아 포기할 것인가, 참고 견뎌낼 것인가의 선택은 순전히 자신의 몫이다. 

나에게 있어 한계는 넘어서기 위한 경계일 뿐이다. 사계를 잘 견디어 낸 자는 희망찬 이듬해 봄볕을 맛 볼 수 있다. 새 달력을 건다고 새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제 마음 그대로 새로운 시간을 맞는 건 퇴보다. 남과 비교할 때 행복은 멀어진다. 행복은 열정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덤으로 그 삶에 덧입혀지는 향기이다. 그래서 행복이 쌓이면 삶의 동력이 된다. 2017년 정유년丁酉年 새해 아침, 다시 시작하고 싶다면 경계의 벽을 허물고 한계의 벽을 뛰어 넘어보자. 그래야 성공도 행복도 거머쥘 수 있다.

#사막 #오지 #김경수 #직장인모험가 #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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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을 핑계삼아 지구상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넘나드는 조금은 독특한 경험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오지레이서라고 부르지만 나는 직장인모험가로 불리는 것이 좋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지난 19년 넘게 사막과 오지에서 인간의 한계와 사선을 넘나들며 겪었던 인생의 희노애락과 삶의 지혜를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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