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최대의 동굴사원 담바라를 가다

스리랑카 불교유적지 답사

등록 2017.02.06 14:55수정 2017.02.0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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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사원 담바라 입구 담바라 지역의 거대한 바위동굴 사원 입구로 부처님을 모신 5개의 크고 작은 동굴사원이 있다.
동굴사원 담바라 입구담바라 지역의 거대한 바위동굴 사원 입구로 부처님을 모신 5개의 크고 작은 동굴사원이 있다.이윤옥

바위동굴 복도 긴 복도를 따라 바위동굴이 자리하고 있으며 순례객들은 이 복도를 이용하여 각 동굴사원에 참배한다.
바위동굴 복도긴 복도를 따라 바위동굴이 자리하고 있으며 순례객들은 이 복도를 이용하여 각 동굴사원에 참배한다. 이윤옥

와불 1 바위동굴 사윈에 누워있는 부처님
와불 1바위동굴 사윈에 누워있는 부처님이윤옥

담바라(Cave Temples of Dambulla)에는 거대한 동굴사원이 있다. 기원전 1세기 남인도 타밀족의 공격을 받을 당시의 왕은 이 거대한 동굴로 몸을 피했다. 그러다가 왕권을 다시 찾은 왕은 부처님의 가피를 잊지 않고 이곳 담바라 동굴에 장엄한 사원을 지은 것이다.

담바라는 수도 콜롬보에서 148km 떨어진 곳이지만 기자 일행은 부처님이 두 번째 방문한 스리랑카 최북단 자푸나로부터 중간 중간의 유적지를 순례하면서 담바라로 이동하는 바람에 콜롬보를 떠난 나흘만에야 어제(4일) 담바라에 도착했다. 담바라 역시 30도를 오르내리는 찜통더위였지만 나무 그늘에 서면 제법 바람이 불어 시원했다.

담바라에는 모두 5개의 크고 작은 동굴사원이 있는 데 가장 큰 동굴은 제2동굴로 길이 50미터, 높이 7미터, 깊이 25미터로 동굴사원에 들어서면 끝이 아득할 정도로 넓다. 이 거대한 동굴사원에는 벽마다 부처님의 일생을 그린 벽화가 빼곡하고 동굴 속에는 무려 56개의 불상들이 누워있거나(와불), 앉아있거나(좌상), 서있는 모습(입상)으로 가득하여 참배객들의 눈을 휘둥그레 만든다.

좌불 바위동굴 사원의 앉아 있는 부처님
좌불바위동굴 사원의 앉아 있는 부처님 이윤옥

선 부처님 바위동굴 사원에는 서있는 부처님
선 부처님바위동굴 사원에는 서있는 부처님 이윤옥

바위동굴의 불상들 바위 동굴마다 가득한 불상은 기원전 1세기 불교의 융성을 말해준다
바위동굴의 불상들바위 동굴마다 가득한 불상은 기원전 1세기 불교의 융성을 말해준다이윤옥

온갖 불상 거대한 바위 동굴 안은 벽화와 다양한 모습의 불상으로 그득하다
온갖 불상거대한 바위 동굴 안은 벽화와 다양한 모습의 불상으로 그득하다이윤옥

와치싸라 누워있는 부처님 상 앞에선 와치싸라 스님
와치싸라누워있는 부처님 상 앞에선 와치싸라 스님이윤옥

규모로 보면 중국 감숙성의 둔황 석굴이나 천불동 동굴사원과는 견줄 수 없는 작은 규모이지만 둔황 석굴이 각 동굴마다 부처님 한 분을 모셨다면 스리랑카의 동굴사원에는 수십 개의 불상이 한곳에 모셔지고 있다는 점이 큰 차이점으로 다가왔다.

스리랑카의 수많은 불교유적지가 인도 타밀족의 침입으로 파괴되거나 온전한 게 없을 정도인데 견주어 담바라 동굴사원의 불상들은 거의 손상을 입지 않은 채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지상과는 먼 산 위에 자리 잡은 까닭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았다.

담바라 동굴사원을 만든 때가 기원 1세기 무렵이니 부처가 인도에서 불교를 탄생시키고 난뒤 400년이 흐른 뒤의 일이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서력(西曆)으로 환산하면 2100여 년 전의 일이니 까마득하다면 까마득한 일이 아닌가. 중국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기원후 1세기 후한시대였고 이후로부터도 300년이 지난 4세기 무렵에 고대한국에 불교가 전해진 것을 보면 스리랑카의 불교 역사의 유구함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일본의 불교는 백제 성왕 때(552년)일이므로 6세기다.

와불 2 서로 다른 거대한 누워있는 부처님이 동굴사원 방마다 자리하고 있다
와불 2서로 다른 거대한 누워있는 부처님이 동굴사원 방마다 자리하고 있다이윤옥

와상과 열반상 우리말로 누워있는 부처상이라고는 하지만 한자말로 와상과 열반상은 다르다. 부처님 열반상과 와상의 차이는 발가락은 모은 모습으로 구분하는데 오른쪽 발가락이 약간 위로 올라간 것은 열반상, 나란히 된 것은 와상이다.
와상과 열반상우리말로 누워있는 부처상이라고는 하지만 한자말로 와상과 열반상은 다르다. 부처님 열반상과 와상의 차이는 발가락은 모은 모습으로 구분하는데 오른쪽 발가락이 약간 위로 올라간 것은 열반상, 나란히 된 것은 와상이다.이윤옥

담바라  바위동굴 사원 입구 담바라 지역의 바위동굴 사원 입구
담바라 바위동굴 사원 입구담바라 지역의 바위동굴 사원 입구 이윤옥

유네스코 등록유산 유네스코 등록유산 표시가 있는 입구로 부터 경사진 산을 10여분 오르면 바위동굴 사원이 나온다
유네스코 등록유산유네스코 등록유산 표시가 있는 입구로 부터 경사진 산을 10여분 오르면 바위동굴 사원이 나온다이윤옥

기도하는 여인 바위 동굴 속에 누워계신 부처님께 정성껏 기도하는 여인
기도하는 여인바위 동굴 속에 누워계신 부처님께 정성껏 기도하는 여인 이윤옥

이렇듯 아직 한ㆍ중ㆍ일에 불교가 전파되기 이전에 인도와 하나의 대륙이었던(2,500년 전에는 하나의 대륙으로 작은 강을 건너면 바로 스리랑카였다고 함)스리랑카에는 부처님 자신이 세 번이나 건너와서 직접 불법(佛法)을 전파했으니 그 기나긴 불교의 역사란 불교의 탄생 그 자체와 함께했다고 봐도 지나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일까? 인도양의 아름다운 보석 '스리랑카'는 곳곳이 거대한 불교 박물관이다. 다만 네덜란드ㆍ포루투칼ㆍ영국에 이르는 500년 동안의 식민의 역사와 남인도 타밀족의 끊임없는 침략, 그리고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된 뒤 겪은 30년간의 내전 등으로 곳곳에 불교 유적지는 파괴가 되어 있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내일은 스리랑카의 마지막 방문지인 남쪽의 골(Dutch Fort at Galle)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엊저녁 다시 콜롬보로 돌아왔다.

덧붙이는 글 신한국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담바라 #스리랑카 #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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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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