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혁명 일러스트 - 프랑스 68혁명을 상징하는 일러스트 포스터.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는 프랑스 68혁명의 대표적인 슬로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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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샌프란시스코에 히피들이 모였다면 유럽의 1967년은 어땠을까. 미국과 마찬가지로 냉전 시대와 베트남전에 참전하는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에 대해 불편한 시각을 지니던 젊은이들이 모여 운동을 펼쳐나가고 있었다. 결국 그 응집은 1년이 지나 1968년 5월 프랑스에서 용광로가 되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68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의 젊은이들이 사랑과 평화를 외치며 조금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그들만의 운동을 펼쳤다면 프랑스의 청년들은 언론사를 습격하는 것으로 시작해 대학생 시위,노동자 파업 등 다소 과격한 형태의 반체제 운동을 펼쳤다.
68혁명은 사상적으로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헤겔의 철학에 기초를 두고 있다. 헤겔은 정반합의 변증법을 이야기하며 사회는 어쨌든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한다고 했다. 세계 양차 대전을 겪은 유럽인들은 다시 세상이 나아질 거라 기대했지만 또 다시 일어나는 베트남 전쟁과 냉소간의 긴장감으로 인해 사회의 발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갖기 시작한다. 이는 교육, 문화, 종교 등 기존 사회의 보수적 가치에 대한 의문을 던지며 사회의 진보를 향한 강력한 열망을 표출했다. 결국 이 혁명으로 인해 샤를 드 골 정권은 무너지고 사회가 조금은 진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68 혁명에 대해 프랑스 내에서도 의견은 갈린다. 무조건적인 체제에 대한 반대만 있었던 혁명이라는 비판과 동시에 진정한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이뤄낸 혁명이라는 관점이 아직도 부딪히고 있다.
평가는 갈리고 있으나 당시 프랑스의 움직임은 유럽 전역과 미국에 퍼졌고 심지어 일본의 학생운동 전공투(전학공투회의)에도 영향을 끼친다. 방식의 차이는 조금씩 있어도 어쨌든 전 세계는 혁명의 시기였다는 게 분명하다. 68 혁명과는 관계가 없지만 또 하나의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가 세상을 떠난 해도 1967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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