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에(The Starry Night)빈센트 반 고흐, 1889년
The Bridgeman Art Library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되었다. 새해가 밝았다. 입춘(立春)이 지났다. 한없는 사랑을 주신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죽음을 만나고 사랑하는 이의 임종을 지켜드리자고 그토록 다짐했건만. 사랑에 게으른 난, 할머니의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했다. 장례 기간 내내 눈물을 흘렸다. 지금도 눈물을 흘린다. 뒤늦은 후회와 말뿐인 사랑에 대한 무책임함에 대한 죄의식으로. 결국, 끝까지 나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이기심을 탓하며 슬픔에 젖어있다.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바라보며 슬퍼함은 이별에 대한 슬픔과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잊히는 망각의 중력 때문이리라.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다시 보았다. 죽음을 닮은 밤. 그 밤을 찬란한 인생으로 맞이한 고흐의 해석이 그리웠나 보다. '별이 빛나는 밤'은 고흐가 생레미 요양원에 있을 때 그린 작품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을 무렵이다. 고흐는 밤을 사랑했다. 엄중한 생의 현실인 죽음과 상실, 이별을 사랑했다. 모두가 낮의 찬가를 부를 때 고흐는 밤의 찬가를 불렀다. 밤을 거부하고 영원한 낮을 갈망하는 욕망의 세태를 거절하고 죽음을 생의 현실로 맞이한 고흐의 정신이 그림을 통해 다가온다.
고흐가 바라본 땅의 현실은 정적이다. 삶이라는 현실의 중력 앞에 죽음을 상상할 틈도 없이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의 삶을 대변하는 듯하다. 죽음을 노래하며 마땅히 살아가야 할 삶의 지향점을 가르쳐야 할 교회당에 불은 꺼져있다. 그저, 신 앞에 선 단독자로 삶과 죽음의 의미를 물어야 하는 고흐의 고독함이 전해진다. 반면, 밤의 현실은 동적이다. 황홀하다. 절제된 찬란함으로 서로의 손을 붙잡고 춤을 추는 밤하늘. 굽이치는 역동적 붓놀림. 하늘과 땅을 잇는 사이프러스 나무. 고흐는 그렇게 밤의 찬가를 부르며 삶과 죽음이 하나임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