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표지.
경향신문사
글쓰기 좋은 직업군 가운데 하나가 요리사가 아닐까 싶다. 요즘엔 TV '먹방'의 영향으로 요리사를 셰프라고 부른다. 세상에 많고 많은 음식과 식당, 사시사철 새로 생겨나는 요리까지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없을 것 같은 좋은 소재다. 이 책 <미식가의 허기>를 쓴 박찬일(1965~)도 요리사다.
남들은 '셰프'라고 부르지만 스스로를 'B급 주방장'이라고 말하는 저자. 내성적인 성격에 사교성이 부족해 TV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여행 삼아 찾아가게 만드는 식당들이 나오는 <백년식당>(2014) 등 음식 관련 여러 권의 책을 낸 바 있다. 칼도 잘 쓰고 글도 잘 쓰는 보기 드문 셰프다.
음식을 먹으러 갈 때 정작 주요리보다 반찬 같은 '곁들이'가 더 좋은 경우가 있다. 평범한 칼국수집이 인기가 있는 이유가 알고 보니 맛있는 김치 덕이라거나 스파게티보다 피클이 더 좋은 집이 그런 예다. 그의 책도 그런 면이 있다. 음식과 요리에 버무려 곁들이는 달면서도 매운 세상사와 삶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져 좋다.
B급 주방장의 특별한 미식 이야기 '그럼에도 미식이라고 할 한 줄기 변명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것은 순전히 음식의 건실한 효용을 사랑했던 것이다. 가장 낮은 데서 먹되, 분별을 알려고 했다. 뻐기는 음식이 아니라 겸손한 상에 앉았다. 음식을 팔아 소박하게 생계 하는 사람들이 지은 상을 받았다. 그것이 미식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미식의 철학적 사유와 고급한 가치의 반대편에 있는 저 밥상들이 나는 진짜 미식이라고 생각한다.' - 본문 가운데. 여행을 떠나 밥 먹을 때가 되면 블로그나 SNS를 검색해 지역에 소문난 밥집을 찾아 먹기 보다는, 동네 주민들 혹은 지나가는 경찰 아저씨에게 백반집을 추천받아 간다. '2인 이상'이 가능한 메뉴 사이에서 혼밥이 가능한 데다 집밥 같은 푸근함 분위기는 맛있는 음식 이상의 포만감과 만족감을 준다. 맛이란 직관적이고 생화학적인 결과이지만 이렇게 심리적인 요소도 많이 차지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미식도 비슷하다. 저자는 요리사 후배들과 정기적으로 우리 땅 구석구석을 여행한단다. 음식재료와 맛을 탐구한다는 명목이고 실은 술추렴이라는데, 이 책은 그 와중에 나왔다.
제목에 미식가가 들어가지만, 책 속에 나오는 요리들은 어찌 보면 미식과는 살짝 거리가 있다. 소 등심 대신 돼지국밥, 곱창 같은 내장요리가 나오고, 장터 노천의 국숫집, 기사식당의 조미료가 듬뿍 든 찌개가 나온다. 자칭 B급 주방장의 미식 리스트답다.
책장을 넘길수록 좀 더 높은 경지가 느껴지는 미식의 세계로 독자를 이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요리들을 혀 외에 머리와 가슴으로 새롭게 맛보게 된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찬양과 숭배보다 먹고 사는 일의 소중함이 담겨있다.
그냥 미식가와 요리를 직접 하는 미식가가 음식을 바라보는 시선은 많이 다르구나 싶다. 저자가 주방장으로 일한다는 식당엔 못 가봤지만, 그가 쓴 책은 꼭 찾아 읽게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