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주의(김경희 지음)공화주의에 대한 괜찮은 입문서인 <공화주의>(김경희 지음)를 함께 읽고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길과 시민이 갖추어야 할 자세를 생각해 보면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몽테스키외와 루소의 공화주의를 소개하지 않은 점은 이 책의 아쉬움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짧은 분량으로 알차고 친절하게 공화주의를 소개하는 미덕이 있다. <공화주의>를 펼쳐 함께 읽으며 진정 국가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을 나눠 보자.
책세상
문제는 그러한 나라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수 있느냐다. 공화주의는 이에 대해서도 중요한 해법을 제시한다.
공화주의는 힘의 불균형에서 비롯한 갈등 관계 또는 긴장 관계에 있는 사회 세력 사이에 '균형 갖춘 정치 체제'(혼합정)를 지향한다. 이는 진정한 자유를 위해 누구도 지배당하거나 예속 관계에 처하지 않아야 한다는 공화주의 정신의 필연적 귀결이다.
또한 힘의 불균형은 결국 부정부패를 낳게 된다는 통찰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며, 사회의 다양한 세력 간에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평등하게 발언할 기회가 보장되지 않을 때 극단적 갈등과 상대에 대한 증오와 혐오로 치닫게 된다는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생각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바람직한 국가를 고민하며 내세운 핵심 원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구체적인 예로,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균형을 잡기 위해 정치 참여에 있어 '벌금과 수당의 혼합'을 주장했고, 엘리트와 일반 시민 사이의 권력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해 관직 선발에 있어 '선거와 추첨(제비뽑기)의 혼합'을 주장했다.
이후 키케로, 마키아벨리, 몽테스키외 등 오늘날까지도 중요하게 언급되는 정치 사상가들 역시 공화주의를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한 핵심 원리로 '균형 갖춘 정치 체제'(혼합정)를 제안한다.
균형 갖춘 정치 체제를 지향한다는 것은 우선 공동체를 구성하는 여러 계층들 간의 다양성과 다원성이 있음을 인정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 안에 다양한 갈등이 있다는 것 역시 전제한다. 그러한 다양성과 다원성을 인정한 상태에서 정치 사회의 다양한 계층 혹은 세력들을 혼합하고 힘의 균형을 바로잡아야 사회가 건강해지고 활력이 넘치게 된다.
반면 배제나 차별, 획일화, 예속적 지배는 구성원들이 불만을 품게 해 소모적인 갈등과 사회의 불안정을 가져온다. 동시에 그러한 지배를 추구하는 이들은 부정부패의 길로 빠지게 된다.
결국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서, 다양한 사회 세력의 소모적 갈등을 막기 위해서, 나아가 여러 갈등과 긴장 관계에 있는 세력을 조화롭게 통합해 공동체의 건강한 활력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정치 체제가 바로 균형 갖춘 정치 체제(혼합정)인 것이다.
자본가와 노동자, 제왕적 대통령과 시민 사이의 불균형이번엔 좀더 구체적인 현실을 얘기해 보자. 공화주의 사상가 루소는 일찍이 "누구도 타인을 지배할 정도로 부가 넘쳐서는 안 되고, 누구도 노예나 다름없는 상태에 처할 정도로 가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사회에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아야 하고 누구도 지배받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 공화주의 정신이다. 나아가 그때그때 적절한 '법과 제도로'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실직적인 자유와 평등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공화주의 정신이다.
이러한 공화주의 정신은 오늘날 노동 3권(단결권, 단체 교섭권, 단체 행동권) 도입과도 맥락이 통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가가 주가 된 사회다. 반면 노동 3권은 노동자에게 힘을 주는 법이다.
노동자에게 특별히 그러한 법으로 권리를 보장하는 이유는 그럼으로써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힘의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덕분에 노동자는 노예와 같은 처지로 전락하지 않고 직장 내에서 자본가와 대등하게 협상을 벌일 수 있게 된다. 또한 노동자는 사회에서 배제되거나 지배당하지 않으며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얻게 된다.
나아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시행하지 않지만, '노동자의 경영 이사회 참여' 제도나 노동법의 보루인 '노동 법원'을 독립적으로 두는 것도 힘 있는 세력을 견제하고 사회 세력 간의 갈등을 적절한 법과 제도로 해결하고자 하는 공화주의 정신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썩기 마련이다. 우리는 박근혜-최순실-이재용 게이트를 통해 국가 권력을 돈으로 매수하려는 자본가(재벌)의 부정부패를 마주하게 되었다. 공화주의 정신에 따라 그 거대한 힘을 견제하고 균형을 잡는 다양한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일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공화주의 정신은 우리가 마주한 제왕적 대통령제에도 따가운 눈길을 돌리게 한다. 제왕적 대통령은 부정부패에 빠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으며, 나라의 주권자인 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침해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정부의 여러 기관을 구성하는 인사권을 축소하여 주권자인 시민에게 돌려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법률 엘리트·정치 엘리트와 일반 시민 사이의 불균형이렇듯 "세력 균형을 회복해 공동체 구성원들의 활기를 불러일으키려는 노력은 공화주의의 핵심"이다. 그래서 "공화주의는 '주의'라기보다는 하나의 '운동'"(<공화주의>, 김경희 지음, 25쪽)이 된다.
공화주의 정신은 우리 사회에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지녀 갈등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이들이 누구인지, 상대적 약자가 충분히 발언하고 논의할 수 있는 공론장이 법과 제도로 보장되어 있는지, 힘의 불균형으로 불신과 혐오가 일어나는 곳이 어디며 그것을 어떻게 조화롭게 통합할 수 있는지 등을 돌아보게 한다.
전통적인 공화주의는 대체로 귀족과 일반 시민 사이의 힘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운동이었다. 현대의 공화주의는 자본가와 노동자, 법률 엘리트와 일반 시민, 부동산 업자와 집 없는 서민, 의사와 환자, 남성과 여성, 직업 정치인과 일반 시민 사이의 힘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법과 제도를 만들 것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에서 시민에 대한 법률 엘리트의 지배를 완화하고 힘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일반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배심제'와 '참심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직업 정치인의 이익이 주로 대변될 뿐 진정 일반 시민들의 요구는 처리되지 않는 국회를 바로잡기 위해, '시민의회'를 도입할 수 있다. 시민의회는 일반 시민을 추첨(제비뽑기)으로 뽑아 구성하며 법률안 제안권과 거부권 등을 갖는 기구다.
그럼으로써 국회 권력을 시민이 직접 견제할 수 있게 된다. 추첨으로 선발하는 이유는 누구도 소외받지 않게 다양한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누구나 평등하게 발언할 수 있게 보장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국회-시민의회 양원제'를 운영해 상호 견제와 균형을 갖추면 그때에야 비로소 국민에 의한 정치, 국민을 위한 정치가 가능해질 것이다. 이는 공화주의가 우리 사회에 선사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다.
촛불 항쟁은 바람직한 나라가 무엇인지 문제 제기해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촉발한 촛불 항쟁은 평범한 시민이 주인공이 되어 만든 역사이다. 촛불 시민은 현 대통령을 쫒아내고 단지 새로운 대통령 하나를 뽑자는 것만으로 긴 겨울을 거리에서 보낸 것이 아니다.
광장의 외침은 헌법 정신을 지키자는 외침이며, 공정함, 정의로움, 공공선을 향한 외침이다. 또한 촛불 항쟁은 "이게 나라냐?"라고 항의하며 진정 나라다운 나라가 무엇인지, 우리가 민주공화국을 어떻게 실현할지, 정의·공정·공익을 추구하는 나라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해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민주공화국은 소수 엘리트들이 대신 만들어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민주공화국은 시민 스스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체득하고 공정·정의·공익의 원칙에 따라 법과 제도를 만드는 일에 적극 참여할 때 이루어질 수 있다.
요즘처럼 광장의 외침으로 바람직한 나라를 고민하게 되는 때에, 진정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공화주의의 지혜에 주목하고 그 가치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공화주의는 곱씹을수록 우리 사회에 좋은 선물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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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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