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플 자유도 없어요"

장애 자녀를 둔 영수씨 부부의 힘겨운 생활을 보며

등록 2017.03.05 15:23수정 2017.03.05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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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저녁에 다달이 한 번씩 만나서 부부동반 식사를 하는 영수씨(가명) 부부랑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비도 조금 내리고 걸어가기에는 먼 거리라서 그의 차로 가기로 했습니다. 차 안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그의 아내가 며칠 전에 남편과 장애가 매우 심한 큰딸이랑 오랜만에 영화 '싱글라이더'를 보러 간 이야기를 했습니다.


늦게 표를 끊어서 남편은 앞쪽에 자신과 딸은 뒤쪽에 앉아서 영화를 보게 됐습니다. 그런데 시작한 지 10분쯤 지났을 때 그만 딸이 대변을 본 것입니다. 평소에 그런 일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휠체어를 탄 딸을 데리고 빨리 영화관을 빠져나와 장애인 화장실로 갔습니다. 둘이 해도 힘든 일을 혼자서 낑낑대면서 하느라고 20~30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그 이야기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얼마 전에 함께 성경공부를 했던 한 사람의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는데 장애가 있는 큰아들이랑 같이 가게 됐습니다. 한창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아들이 그 자리에서 소변을 보는 바람에 급히 데리고 나왔습니다. 언젠가는 그에게 잠시 그 아들을 아내에게 맡기고 영화를 같이 보러 가자고 했습니다. 그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냥 아들이랑 집에 있겠다고 했습니다.

20여 년 전부터 4년 동안 중풍을 앓는 어머니를 모셔봐서 그 심정은 조금 압니다. 하지만 나는 그 일을 대부분 아내가 하고 때때로 아버지가 곁에서 함께하셨기 때문에 그리 힘들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식구 중에서 누군가가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되면 정상적으로 일상생활을 하기가 힘들어진다는 겁니다.

드디어 음식점에 닿았습니다. 동네에 그런 음식점이 있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만 50여 명이나 됐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이름을 음식점 앞에 써놓고 우리는 반시간이나 넘게 기다렸습니다. 지루하게 기다리던 끝에 드디어 종업원이 아내 이름을 부르자 우리는 마치 복권에 당첨이나 된 듯이 매우 기뻐하며 얼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두 명의 여자가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정한 곳이라 그런지 음식점이 매우 깨끗하고 넓었습니다. 초밥이 수십 가지나 있는 곳인데 그런 데는 젊은이나 많이 오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도 여기저기에 보였고, 특히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나는 그런 음식점에선 서투르기 때문에 영수씨 부부랑 아내 뒤를 따라가며 접시에 음식을 담았습니다. 음식도 생전 처음 먹어보는 것들이 적지 않아 좋았지만 놀랍게도 거기에서 들려주는 음악이 7080 노래이기 때문에 너무나 좋았습니다. 나는 음식도 맛있지만 음악 때문이라도 다음에 또 와야겠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사람들이 많고 음악이 끊임없이 나와서 조용히 대화 나눌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우리는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던 중 내 아내가 말을 꺼냈나요, 아니면 그의 아내가 말을 꺼냈나요? 이야기가 건강에 대한 소재로 넘어갔습니다. 집안이 잘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아내가 건강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나와 영수씨는 맞다고 그래야 집안이 행복하다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남편들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호응을 하니 조금 미안했던 것일까요? 그의 아내가 이번에는 남편이 건강하게 잘 생활해야 집안이 잘 된다고 덕담을 건넸습니다. 그러자 내 아내도 당연히 그렇다고 웃으면서 대답을 했습니다. 우리 부모들이 건강하게 잘 살아야 집에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잘 이겨나갈 수 있을 거라는 지극히 당연한 결론을 우리는 내렸습니다.

내 아내가 말했습니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살아가자고 했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내 앞에서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던 영수씨가 고개를 들더니 한 마디 했습니다.

"우리는 아플 자유도 없어요."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자리를 빨리 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기 때문에 얼른 일부러 화제를 다른 것으로 바꿨습니다. 마치 그의 말을 못 들은 체하고 음식이 너무나 맛있으니 우리 오늘 네 번 이상 음식 들고 오자고 말했습니다. 영수씨는 내 말에 웃으면서 그러자고 우리 많이 맛있게 먹자고 했습니다.

속으로 운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요? 잠시 뒤에 밝은 모습으로 일어나서 다시 접시를 들고 음식을 담으러 갔지만 그의 그 말이 내 귀에 꽉 달라붙어서 나의 마음을 몹시 무겁게 했습니다. 영수씨 부부만이 아닐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장애 자녀를 둔 모든 부모들의 삶이 그럴 것입니다. 비장애인들은 도저히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그들은 오늘 이 시간에도 정신없이 바쁘게 생활할 것입니다. 그의 말처럼 아플 자유도 없이 말입니다.

나는 그동안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한 말 중에서 자녀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는 간절한 바람이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아픈 것으로 알았습니다. 자신들이 세상을 떠나면 장애가 있는 그 불쌍한 자녀들을 누가 사랑과 정성으로 돌보느냐는 부모의 마음이 담겨있는 애절한 기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제대로 눈을 감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알았습니다. 간절한 부모의 바람이 담겨있는 그 말 못지않게 그들의 고되고 힘겨운 삶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말이 나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그들의 삶이 어떠하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 말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아플 자유도 없어요."
#장애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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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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