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 반대미등록 이주노동자 추방반대 캠페인 중인 이주노동자들
고기복
요즘 참 많이 좋아졌다고요? 천만에요!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에 다문화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함께 더불어 사는 희망을 이야기하며 세계화니 지구촌이니 하던 말들은 다문화라는 단어 앞에 맥을 못 추고 자리를 뺏겼다. 결혼이주민, 이주노동자, 유학생 등이 방송이나 영화와 같은 미디어에서 주요 소재로 다뤄지고, 그들의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양념으로 올리는 정도가 아니라 주 요리가 될 정도로 다문화 관련 프로그램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언론뿐만 아니라 정부부처와 지자체, 기업과 시민단체들이 만든 다문화 관련 행사와 프로그램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다보니 결혼이주민들을 사업 대상으로 끌어들여 한복을 입히고, 김치를 만들고 나눠주며 생색내기에 여념이 없다. 이처럼 범람 수준의 다문화 담론은 일반 대중에게 착시 효과를 일으킨다. 대중은 "요즘 참 많이 좋아졌어"라며 모든 외국인이 다문화 정책의 수혜를 받겠거니 생각한다. 그런 말 속에서는 상대적 박탈감과 어느 정도의 질시가 담겨 있다.
그러나 다문화라는 말이 뭇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수록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문화 구성원이면서 실제로는 아무런 소리도 못 내는 현실에 직면한 이주노동자, 특히 체류 자격이 없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단속과 추방의 대상이며, 법의 보호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그들은 '차라리 다문화, 다문화 말이나 하지 말지, 왜 말로는 대접하는 것처럼 하면서 실제로는 차별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한편, 반 다문화정책을 외치는 사람들도 '반만 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단일민족, 대한민국에 다문화가 웬 말이냐!'며 다문화에 대한 혐오를 감추지 않는다. 그들에게 다문화정책은 대한민국에서 당장 중단되어야 할 악의 축이다. 다문화정책이 외국인 범죄의 온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그들의 다문화정책 중단 요구에 문화 이슈는 없고, 이주노동 이슈만 있다. 그것도 이주노동자는 미등록자요,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곧 범법자다'는 전제를 깔고 접근한다. 인종적 혐오와 편견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구국단체인 것처럼 포장한다.
반 다문화정책을 요구하는 단체들은 '불법 체류자'라는 단어를 인간 존재 자체가 '불법'인 것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이주노동자가 국내에 체류하며 하는 모든 행위를 불법이라고 간주해 버린다. 심지어 당연한 인권을 주장하는 것마저 불법이라고 매도해 버린다. 그들에게 '외국인 불법 체류자 추방'을 핵심 국정과제로 선택한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대의 영웅일지 모른다.
반 다문화단체들은 '불법 체류자'를 '불법 노동자'로 규정한다. 유엔이주노동자권리협약이 체류 기간을 넘긴 노동자들을 '미등록 이주노동자'라고 부른다고 말하면 콧방귀를 뀐다. 그들은 비자 기간이 만료된 행정사범을 형사범인 것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다문화정책 수혜자로 보이는 이들에게 직접적인 위해 행위를 가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어떠한 위해 행위를 취하는 개인 혹은 집단은 만만한 상대방을 고르기 마련이다. 안타깝게도 외국인 혐오 집단의 시각에서 볼 때 가장 만만한 상대가 바로 이주노동자다. 그 중에서도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손쉬운 먹잇감이다. 배타적 국수주의 혹은 국가주의적 사고를 갖고 있는 외국인 혐오주의자들은 같은 국적자에게는 그나마 우호적이다. 현실적으로 결혼이주민들은 그들의 뒷배를 봐주는 한국 국적의 가족이 있기 때문에 쉽게 건드리지 못한다. 국민 정서상 국민의 배우자에게 위해 행위를 했을 때, 쏟아질 비난을 감내할 자신이 없는 이들은 만만한 상대로 이주노동자를 선택한다.
다문화정책 중단을 요구하는 이들은 이주노동자를 다문화정책의 최대 수혜자로 호도한다. 그들이 설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주노동자들, 특히 미등록자들은 다문화정책 수혜 대상에서는 늘 배제되고 있는데 말이다.
권리는 주장하는 자에게 주어진다고 했다. 하지만 그 권리를 주장할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이들이 다수인 것이 우리사회 이주노동자들이다. 체류 자격을 갖고 있든, 체류 자격을 갖고 있지 않든지, 그들은 모두 우리 시대 소시민이요, 이웃으로 와 있다.
한 인간의 '삶'에 대한 경외는 단순히 체류 자격이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놓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이 땅의 이주노동자들은 합법이라 해도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해'라고 보는 시선이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 시선 속에서 인간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이주노동자들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