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포 대첩 기념 공원의 누각,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정만진
조선 연합 수군의 1차 출전 결과는 어떻게 될까? 5월 7일의 옥포 · 합포 해전과 5월 8일의 적진포 해전이 끝난 후 이순신이 보낸 장계를 통해 일본군과 싸운 첫 전투의 전말을 알아본다.
선봉을 맡아 달려 나갔던 사도 첨사 김완, 여도 권관 김인영 등이 신기전을 쏘아 적선 발견 신호를 보내왔다. 이순신은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태산같이 무겁게 행동하라!'는 지시를 내린 뒤 옥포 포구로 들어갔다. 옥포 선창에는 등당고호(도도 다카토라)가 이끄는 50여 척의 왜선들이 여기저기 정박해 있었다. 일본군들은 배에서 내려 노략질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마을 곳곳에 불을 지른 탓에 지붕을 흘러넘친 화염이 바다까지 뒤덮고 있었다.
요란한 치장으로 상대를 위압하려는 일본 전함들일본 전함들은 한마디로 요란했다. 큰 배는 갖가지 무늬로 수를 놓은 비단 휘장을 사방에 둘렀고, 휘장 주변에 대나무 막대기를 꽂고 있었다. 또 펄럭이는 천과 움직이는 등처럼 생긴 붉고 흰 깃발들을 어지럽게 많이 매달아 놓아 눈이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아군도 왜적과 처음 치르는 전투였다.) 군사들이 겁을 내어 망설이자 후부장 정운이 북을 치면서 가장 앞서 적을 향해 배를 몰아 세웠다. 그러자 다른 배들도 서로 뒤지 않으려고 앞을 다투게 되었다.(이형석<임진 전란사>)' 왜적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아군 전함들을 보고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적들은 아우성을 치면서 제각각 노를 저어 산기슭 아래 해안선을 타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감히 바다 가운데로 달려 나와 아군에 대적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조선 수군의 기습이 너무나 벽력같았기 때문이다. 적선 중 여섯 척이 그나마 조총을 쏘면서 저항했지만 사정거리가 100m 정도에 지나지 않아 200m를 훌쩍 넘는 조선 대포에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일본군 조총과 조선 수군의 화포아군은 적을 양쪽으로 에워싸면서 천둥처럼 대포를 발사하고 바람처럼 활을 쏘았다. 적들도 조총과 화살을 쏘아댔다. 적의 저항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적들은 배에 싣고 있던 물건들을 바다에 내던졌다. 아군에게 빼앗기느니 물에 집어넣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화살에 맞은 놈, 바다로 뛰어들어 헤엄쳐 달아나는 놈 등 그 수를 미처 헤아릴 수가 없었다. 적들은 한꺼번에 무너져 각각 바위 언덕으로 기어서 올라갔는데, 서로 뒤질까 봐 두려워하는 듯이 보일 정도였다. 아군의 장수들은 군사들과 함께 왜적의 전선들을 무참하게 격침시켰다.
좌부장 낙안 군수 신호 : 큰 배 한 척 격파우부장 보성 군수 김득광 : 큰 배 한 척 격파전부장 흥양 현감 배흥립 : 큰 배 두 척 격파후부장 녹도 만호 정운 : 중간 배 두 척 격파중부장 광양 현감 어영담 : 중간 배와 작은 배 각 두 척 격파중위장 방답 첨사 이순신 : 큰 배 한 척 격파좌척후장 여도 권관 김인영 : 중간 배 한 척 격파우척후장 사도 첨사 김완 : 큰 배 한 척 격파좌부기전통장 순천 대장 유섭 : 큰 배 한 척 격파우부기전통장 보인은 군인이 아니라 군대를 후원하는 민간인이다. 보인 이춘이 옥포 해전에서, 보인 김봉수와 유배 생활 중이던 주몽룡이 적진포 해전에서, 역시 귀양살이 중이던 이응화가 합포 해전에서 공을 세운 것은 전투 능력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이순신이 해전에 참전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이춘 : 중간 배 한 척 격파유군장 발포 가장 나대용 : 큰 배 두 척 격파한후장 군관 급제 최대성 : 큰 배 한 척 격파참퇴장 군관 급제 배응록 : 큰 배 한 척 격파돌격장 군관 이언량 : 큰 배 한 척 격파군관 변존서, 전 봉사 김효성 : 큰 배 한 척 격파경상도 수군 : 큰 배 다섯 척 격파 36척(판옥선 24, 협선 15)의 전라 수군이 적선 21척, 6척(판옥선 4, 협선 2)의 경상 수군이 적선 5척을 격파했다. 경상 수군도 선전했음을 알 수 있다. 잡혀 있던 포로를 되찾고, 적들의 무기를 탈취한 것 등은 말할 것도 없지만, 적선을 부수어 물속에 집어넣은 것만도 스물여섯 척이나 되었다. 온 바다가 불꽃과 연기로 뒤덮였다.
산으로 달아난 적병 추격을 포기하는 이순신적들은 모두 산으로 달아났다. 이순신은 각 배에서 특히 활을 잘 쏘고 용맹한 군사들을 뽑아 산으로 보낼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거제도가 적의 소굴이라는 점, 섬 전체가 산이 험악하고 나무가 울창하여 우리 추격 군사들이 발을 붙이기 어렵다는 점, 명사수들을 섬에 올려 보낸 틈을 타 자칫 적들이 배를 기습할 수도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그만두었다. 게다가 날도 점점 저물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