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철 청파초등학교장이 지난 3일 호도분교 녹도학습장에서 류찬희군(오른쪽)과 옆 섬마을 호도분교 고가은양의 입학허가 선언을 하고 있다.
충남교육청
이 기사를 읽고 나서 생각의 끈은 지난 연말연시에 있었던 대전의 변두리 학교인 기성초등학교 길헌분교의 통폐합 논란에까지 닿았습니다. 길헌분교는 전교생이 22명에 불과한 소규모 학교입니다.
지난 연말 대전교육청은 학생 수가 적어서 두 학년씩 같이 수업을 진행하고, 조리실이 따로 없어 급식도 본교에서 가져다 먹는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로 길헌분교를 폐쇄하고 본교와의 통합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길헌분교 학부모 18명 전원은 대전시교육청이 통폐합 기준인 학부모 75% 이상의 동의를 얻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폐합을 추진한다면서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학부모들은 도심의 큰 학교가 싫어서 일부러 길헌분교에 아이를 보낸 분도 있고 통합되면 거리가 먼 기성초등학교까지 통학의 어려움도 상당하다고 하소연했습니다. 또,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은 무시하고 무리하게 통폐합하는 것이 교육부로부터 지원받는 인센티브 30억 원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주장했습니다.
학부모와 지역 시민단체가 통합반대운동을 펼친 결과, 지난 1월 대전시의회 교육위원회에서 기성초 길헌분교장 통폐합을 다룬 대전시립학교 설치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은 학부모와 주민의 의견수렴 부족 등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부결됐습니다.
한 명의 학생을 위해 10년 만에 폐교를 되살린 충남교육청과 학생과 학부모 모두가 반대하지만 22명의 학생을 강제로 본교와 통폐합하려고 한 대전교육청의 교육정책은 많이 다릅니다. 몇달 사이에 공교롭게도 이웃한 두 교육청에서 소규모 학교에 대해서 전혀 상반되는 모습이 나온 것이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한 명의 입학생을 위한 학교1970년대와 40년이 훌쩍 지나버린 현재를 비교해보면 각종 경제발전 수치만 봐도 대한민국은 비약적인 성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커진 빈부 격차와 소득 격차, 그리고 도농 간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실질적 차이는 발전의 과실을 어떤 특정세력과 지역만이 가져간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합니다.
1970년대에는 가능했던, 섬에 사는 학생 한두 명도 학교를 갈 수 있게 책임지는 공교육이 2017년에는 가능하지 않다면 그런 발전이 큰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31조는 교육권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모든 국민은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자녀에게 의무교육을 받게 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입니다. 자녀가 의무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라면 국민이 어디에 거주하고 있더라도 교육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국가에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녹도로 이사 온 류찬희군은 섬에 학교가 없어 이웃 섬마을 학교인 청파초 호도분교로 매일 배를 타고 통학해야 할 처지였다고 합니다. 마땅한 통학수단이 없자 찬희 부모님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지난해 충남도교육청에 "아무리 어려워도 가족은 함께 해야 하며, 의무교육 대상자인 찬희를 국가가 책임져 달라"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를 했다고 합니다.
이에 충남도교육청은 재정적 어려움과 효율성보다는 한 학생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행정이 평등한 교육의 출발선이라며 녹도에도 학교를 여는 결정으로 화답을 한 것입니다. 한 명의 초등학교 입학생을 위해 10년 만에 학교를 연 충남교육청의 결정이 22명의 초등학생과 그 학부모 모두가 반대하는데도 폐교를 추진한 대전교육청의 교육행정보다 훨씬 인권적이고 헌법 가치에 충실한 교육행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
대전충남인권연대는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소중한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세계평화의 기본임을 천명한 세계인권선언(1948.12.10)의 정신에 따라 대전충남지역의 인권현실을 개선시키기 위해 인권상담과 교육, 권력기관에 의한 인권 피해자 구제활동 등을 펼치는 인권운동단체입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