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패스>
김영사
이어 저자는 변덕스러운 세상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에 대한 맹자의 가르침에 주목한다. 맹자는 세상은 분열되고 무질서하기에 안정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때만 인간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살아갈 수 있다는 게다.
맹자는 우리가 상황을 긍정적인 쪽으로 이끌기 위한 어떤 잠재력을 타고 났다고 믿었다. 그것은 선(善) 즉, 인을 실천할 잠재력이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한 것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다. 선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아래로 흐르지 않는 물이 없다"고 했다. 저자는 맹자에 기대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인을 싹 틔우고 재배할 조건을 한 단계씩 배워나갈 수 있다. 처음에는 보잘것없는 들에서 싹을 틔우는 한 농부로 시작하겠지만, 그 결과는 주변으로 점점 퍼져나간다. 우리가 선을 베푼 사람들이 이번에는 자기들도 더 나은 행동을 하고 자신의 인을 싹 틔운다. 이런 인의 순간이 차츰 쌓여 하루를 채우고, 결국은 삶 전체를 가득 채운다.
머리와 가슴은 똑 같이 마음(心)에 연관된다. 즉, 우리의 마음은 합리성의 중심일 뿐 아니라 감정의 근원이다. 따라서 머리와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면 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게다.
신영복 교수는 우리에게 가장 먼 거리의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라 했다. 맹자는 "머리를 써서 감정을 수양하라. 무엇이 내 감정과 반응을 촉발하는지 날마다 주시하라"고 가르쳤다. 그에게 마음수양은 세상과 자신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세상에 더 깊이 관여하게 할 뿐만 아니라, 나와 주변사람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하여 맹자에게 마음수양은 곧 복잡한 맥락에서 '유연한 판단'을 내리는 능력과 연관된다. 그에게 마음을 닦는다는 건 판단력을 갈고닦는 것이다. 우리는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계획할 수는 없지만, 더 풍요로운 삶을 가능하게 만들 여건을 조성하는 것은 가능하다.
맹자는 삶의 세계는 하늘의 명(命)이 지배한다고 보았다. 그에게 "수갑을 차고 죽는 건 올바른 명이 아니다". 하지만 "명을 아는 자는 위험한 담 밑에 서질 않는다. 자기 도(道)를 다하고 죽는 게 올바른 명이다."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세계로 보이기 시작한다. 필자가 보기에 여기 맹자는 공자의 연장선에서 논의될 뿐, 맹자의 '호연지기'(浩然之氣)나 군자에게 요구되는 고결하고 담대한 '지'(志)의 세계가 빠져 있어 아쉽다.
노자에 대해태풍에 큰 참나무는 가지가 부러지기도 하지만 어린 나무는 바로 그 약함 덕분에 살아나 번식한다. 노자(老子)에 의하면 어린 나무가 살아남는 이유는 그것이 '도'에 가깝기 때문이다. 노자에게 '도'는 모든 것에 우선하는 근원이며, 말로 형언할 수 없고 분별이 없는 상태다. 노자는 영적 깨우침과 일상이 연관되는 것임에도 우리가 그것을 분리함으로써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노자는 유교의 기본 덕목인 인과 의, 즉 어짊과 옳음까지도 곧바로 구분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위험하다고 보았다. 그것은 모든 것이 구분 없이 연관되는 상태인 도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란다. 노자는 변화를 적극 지지하지만, 그 변화를 실천하는 방법론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노자는 "약함이 강함을 이기고,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는 입장이다. 하여 노자에게는 '무위'(無爲)를 실천하는 사람이야말로 막강한 사람이다. 저자는 덫으로 나폴레옹을 시베리아 내륙 깊숙이 유인한 러시아 장군들을 보라고 말한다.
진정한 영향력은 눈에 띄는 힘이나 의지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무척 자연스럽게 느껴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세계를 만드는 데서 시작된다. 이것이 노자식의 현인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노자가 말하는 지도자는 "공을 이루고 일을 완수해도 백성들은 하나같이 '저절로 그리되었다'고 말하는" 그런 사람이다.
따라서 진정한 힘과 영향력은 직접적 행동이나 눈에 띄는 전략에서 나온다기보다 극적으로 다른 현실이 조성될 토대를 다지는 데서 비롯된다. 그것은 작은 것에서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나중에는 세계를 바꿀 변화를 이끌어내는 방법이 된다. 이를 실천한 역사적 인물로 저자는 링컨, 루즈벨트, 레이건 등 세 사람의 대통령을 들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반은 수긍이 가지만 반은 납득하기 어렵다.
노자에 이어 저자는 기원전 4세기 중국의 '내업'(內業)을 말한다. 여기서 그는 모든 인간이 내면적으로 갖추고 있는 신성(神性)에 주목한다. 인간은 자기 수양을 통해 신성을 얻어 세상을 바꿀 수 있고, 또 바꿔야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살아 있는 활기를 느끼게 하기 위해 '심호흡'을 권장한다. 우리는 숨쉬기로 자신을 달래고, 부정적 감정을 다스리고 마음을 편히 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기운을 들이마신다. 우리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또 하나의 예는 적절한 운동이다. 몸 운동을 통해 뇌에서 분비되는 '엔드로핀'을 '내업'에서는 내 안에 흐르는 정기 또는 혼이라 했다.
'내업'에 따르면, 우리가 체험하는 것은 모두 기(氣)에서 나온다. 이 '기' 가운데 가장 신묘한 기운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활기를 주는 '신성한 기운'이다. 동학에서도 인간을 "안으로는 신령하고, 밖으로는 모든 기운과 통하는"(內有神靈, 外有氣化) 그런 존재로 규정했다.
'기'(氣)는 모든 것에 존재하지만 무생물은 저차원의 거친 '탁기'(濁氣)로 구성되고, 고차원의 정제된 생명에는 '정기'(精氣)가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그 기가 가장 신묘하고 정제된 수준에 이르면 '신기'(神氣)가 된다. 우리 인간은 아래에 있는 땅의 탁기와 위에 있는 하늘의 신기가 합쳐진 존재다. 그래서 '천지인'(天地人) 삼위가 일체다.
인간은 나이가 듦에 따라 기가 점점 빠져나가 탁기만 남을 수도 있고, 혼을 잘 갈무리해서 신의 경지에 더 가까워질 수도 있다. 그 '기'가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 하여 '내업'에서는 자기 수양을 통해 평정심을 유지하도록 권고한다.
우리가 나이 들면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능력을 키운다면 점점 도에 가까워지고 활력을 느끼게 된다. 내면의 안정을 유지할수록 좋은 기를 품을 활력이 향상된다. 몸과 맘은 모두 기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몸을 단련하면 마음을 단련하는 데도 좋고, 마음을 안정되게 하면 몸을 편하게 하는 데에도 좋다.
하여 '내업'에서는 바른 자세로 몸을 곧게 펴고 서서 기가 원활히 순환하게 하라. 규칙적으로 심호흡을 해 평온한 호흡으로 가슴을 채워라. 식사는 규칙적으로 하되 절제해서 기를 일정하게 유지하라는 식으로 가르친다. 그리고 "분노를 그치는 데에 시만 한 게 없고, 근심을 없애는 데 음악만 한 게 없다"고 했다. 즉, 음악과 시를 통해 기를 수양하라는 게다.
하지만 철학자 장자(莊子)는 인간을 신격화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그런 인간의 영역을 아예 뛰어 넘으라고 가르친다. 예전에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며 마음껏 즐기는 동안 자신이 장자라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다 꿈에서 깨어보니 자기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자가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장자는 유명한 나비 이야기로 세상을 바라보는 평범한 시각을 깨고자 했다.
장자에게 세상을 즉흥적으로 만끽한다는 것은 그 즐거움에 넋을 잃은 상태로 '몰입'할 때 얻는 느낌이다. 장자가 말하는 '도'는 끊임없이 흘러가고 변화하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이다. 장자는 '음'과 '양'을 말하면서, 겨울에는 차갑고 어두운 기운인 음이 득세하다가, 차츰 덥고 밝은 양의 기운이 득세하면서 여름이 온다고 했다.
음양의 모든 기운이 끝없이 필연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변하는 것은 계절만이 아니다. 우주의 모든 변화가 음양의 작용에서 생겨난다. 이런 음양론에 착안하여 국문학자 조동일은 인류 문명사의 흐름을 '생극론'(生克論; becoming-overcoming)으로 일반화했다.
장자는 우주를 통틀어 저절로 도를 따르지 않는 단 하나! 바로 우리 인간을 말했다. 우리 인간만 저절로 도를 따르지 않는다는 게다. 장자에는 포정이라는 백정의 이야기가 나온다. 포정의 일과는 칼을 쥐고 소의 뼈와 살을 발라내는 작업으로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 경력이 쌓이고 요령이 생기자 포정은 어떤 소든, 어느 부위든 보편적 유형의 흐름을 찾아낸다. 그는 춤을 추듯 완벽한 리듬으로 고기를 자르고 뼈를 골라낸다. 포정은 의식적으로 신경 쓰기보다 혼을 쏟을 때 도를 감지했다.
이로써 그는 일상을 채운 신들린 칼질에서 만족감과 즉흥성을 찾아냈다. 통치자는 포정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훌륭하구나! 그에게 삶을 제대로 사는 법을 배웠노라"면서 감탄했다. 이런 삶은 잘 훈련된 즉흥성 때문이다. 장자가 말하는 소요유(逍遙遊)의 대자유는 이런 경지다.
장자는 우리의 상상력과 창조력은 지속적인 즉흥적 몰입의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았다. 여기 진정한 상상력과 창조력은 일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답하는 핵심이다. 세계 전체를 열린 공간으로 체험할 때 모든 순간이 창조적이고 즉흥적이 된다. 우리의 의도된 경험을 초월해 상상하는 능력을 꾸준히 키운다면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게다.
장자의 가르침에 의하면, 우리가 삶을 새롭게, 열정적으로 경험하려면 모든 것을 다르게 보는 원칙으로서 '관점 이동'을 해야 한다. 장자는 마음을 활짝 열고 모든 삶을 끌어안는 사람을 말한다.
마음을 열고 삶을 끌어안는 사람에게 다림질도 지겨운 집안일이 아닌 훈련된 즉흥성을 키우는 연습으로 볼 수 있고, 코감기를 불편한 것이 아닌 이불속에서 소설을 읽는 기회로 볼 수 있으며, 파혼을 상심이 아닌 새로운 미래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그저 모든 현상은 흐름과 변화의 과정일 뿐이다.
장자에게는 죽음도 도의 끝없는 순환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인간으로 살던 나는 죽는 순간, 더 큰 자연의 일부가 된다.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항상 우주의 흐름과 변화의 일부이며, 앞으로도 늘 그러할 것이기에 죽음도 삶의 한 과정일 뿐이다. 열린 태도로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면 우주 전체를 조망하고 세상의 끝없는 변화를 수용할 수 있다.
이것이 장자가 제안하는 무제한적 관점과 훈련된 즉흥성이다. 인간을 초월하는 능력은 바로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에서 나온다. 우리가 지구상의 어떤 존재보다 우주를 더 넓게 포용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방대한 상상력 덕분이다. 오로지 우리 인간만이 끝없는 가상 세계로 들어가 다른 존재의 시각으로 우주를 대면할 수 있다. 이것이 도에 따라 변화의 흐름을 타는 삶이다. 이른바 큰 자유 속에서 소요하는 삶이다.
이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가능성의 시대'를 말한다. 예수회는 16세기에 중국으로 길을 떠났다. 거기서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이들은 자신이 목격한 것을 보고서에 이렇게 기록했다.
관료제는 귀족이 아닌 교육받은 지식층이 이끌었고, 법률은 농민이든 귀족이든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었으며, 사람들은 과거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교육을 받았고, 능력을 중요시해 사회이동이 가능했다. 이 모두가 유럽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이 기록은 2세기가 지나 유럽 전역을 휩쓴 계몽주의의 불씨가 되었다. 저자는 유럽이 물려받은 것 중 상당부분이, 나아가 21세기 세계도 고대 중국의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특히 법가 사상은 유럽에서 근대적 합리성에 바탕 한 국가가 출현하는 데에 핵심이 되었다. 하지만 도덕적 수양, 자애로운 인(仁) 사상이나 무위자연 사상은 서양에서 간과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언급한 여러 사상의 갈래 중에서 일상의 세계와 삶에 뿌리를 두고 있는 실용성에 주목한다. 이런 사상적 맥락에서 저자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꿀 최선의 방법을 묻는다. 서양의 지식인다운 해석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분열되어 있다면 그만큼 새로운 질서를 만들 기회도 많은 법이다. 그것은 우리 삶에서 아주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모든 것은 우리 손에 달렸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근데 필자가 보기에 저자가 강조하는 일상 세계와 삶에 뿌리를 둔 '실용성'은 그게 실용적 유효성 때문이 아니라, '원초적 가치'이기 때문에 중요한 게다. 우리가 흔히 <중용>을 '성'(誠)의 철학이라는데, 성심(誠心)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본질적․원초적 가치이지 실용적 수단이 아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고대 동양철학의 지혜에 의존하여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가는 길을 모색한다. 동서양의 지혜가 소통되고 만나는 지점에 희망의 21세기가 자리할 게다. 세상을 바라보는 혁신적 생각은 진적에 동양철학에서 담론화 되어 왔다. 인류역사에서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THE PATH 더 패스 : 세상을 바라보는 혁신적 생각 - 하버드의 미래 지성을 사로잡은 동양철학의 위대한 가르침
마이클 푸엣.크리스틴 그로스 로 지음, 이창신 옮김,
김영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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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둥이로 태어나 지금은 명예교수로 그냥 읽고 쓰기와 산책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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