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에서 만난 소설가 이인휘. 그는 불의한 세상에 저항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조호진
그를 처음 만난 건 1980년 말 구로동 산동네 혹은 가리봉시장 어디서쯤이었을 것이다. 전두환의 광주 학살을 알게 되면서 받은 충격으로 대학을 그만둔 후 이리저리 떠돌이 생활을 하다 구로동에 정착한 그는, 분신자살한 노동자 박영진 추모사업회를 만들고 <활화산> 등의 노동소설을 쓰면서 노동자 생활문예지 <삶이 보이는 창>을 만들었다. <삶이 보이는 창>은 그의 헌신 덕분에 노동 문예지로 한층 성장했다.
구로공단 프레스공인 나는 노동시를 쓰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이내 허공에 종 주먹질하고 말았다. 노동해방의 깃발이 찢겨지고 노동문학이 곤두박질치면서 그와 나는 패잔병처럼 뿔뿔이 흩어졌다. 찢긴 깃발보다 더 위태로운 건 벼랑 끝으로 내몰린 삶이었다. 그는 아픈 아내를 부여안고 시골로 떠났고 나는 무너진 삶의 잔해더미에서 생존의 몸부림을 쳤다.
밤새도록 우짖는 새야어둠을 가르려고 부리에 피 흘리는 새야무엇을 잃어버렸니 무엇을 기다리는 거니바람도 네 슬픔을 피해 가는 이 밤생을 다한 유성이 빛을 뿌리며 사라지고우리 또한 그렇게 사라질 것을노래를 불러주리 내 노래를 들어 보렴아무도 듣지 않는 내 노래를 들어보렴
(이인휘의 장편소설 <건너 간다> 중에서)다시는 부르지 못할 줄 알았다. 부르긴 했으나 흘러간 노래라고 무시당했다. 폐허의 가슴으로 부른 노래는 강을 건너지도 못한 채 익사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한 사내가 저문 강을 건넜다. 겉은 화려한 것 같으나 속은 썩어 악취가 진동하는 패역의 강을 건너면서 밤새 우짖었다. 내 노래를 누가 들어주랴, 통한으로 가슴을 치던 사내의 노래가 파문을 일으켰다. 문학 동네의 흘러간 옛 노래, 다들 거들떠보지도 않던 노동자와 민중들의 이야기가 깃을 치며 날개짓한 것이다.
지난해 가을, 이인휘(59)의 소설집 <폐허를 보다>(실천문학사)가 제31회 만해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그의 작품을 만장일치로 선정한 심사위원회는 "<폐허를 보다>는 오늘날 1980년대와 본질에서 달라진 바 없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환경과 억압적 정치 현실을 핍진하게 그려낸 소설집으로, 기존 노동소설의 경직된 형식이나 교조적 입장에 구애받지 않고 사실과 허구의 절묘한 배합을 통해 절절한 감동을 안겼다"고 높이 치하했다.
만해문학상 수상 이전까지 그는 병든 아내와 사는 관덕마을의 불우한 이웃에 지나지 않았다. 외지인인 그를 주목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놀라고 말았다. '만해문학상이 그렇게 큰 상이여?', '엄청 큰상인 게비여!' 수상 소식을 들은 부론면 정산4리 주민들이 만해문학상 수상을 경축하는 플래카드를 읍내와 마을에 내 걸었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경축할 일은 상금 3천만 원으로 아내의 병 치료 때문에 진 빚의 일부를 갚은 것이다.
"이대로 살다 죽을 것만 같아 내가 불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