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과 원시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필리핀의 바다.
구창웅 제공
슬픈 깨달음... '엄마도 새우를 좋아한다' 새벽밥을 먹고 부지런히 공항으로 가서 아침 비행기를 탄 덕분에 해가 지기 전에 보라카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숙소에 짐을 푼 우리는 해변으로 나갔다.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그곳에서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즐거워했다. 일상을 벗어났다는 해방감은 노인에게나 젊은이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왔다.
키가 훌쩍 큰 필리핀 청년 하나가 다가와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 해 지는 모습을 구경하시죠"라고 청해왔다. 그 정도 말은 영어를 하지 못해도 눈치만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평소처럼 엄마는 걱정부터 했다.
"배 타면 돈 많이 달라고 하는 거 아닐까?"하지만, 막상 조그만 무동력 요트에 오른 엄마는 소녀처럼 신이 났다. 보라카이 섬 바람만을 이용해 꽤 빠른 속도로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요트 위에서 신발을 벗고 먼 곳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태평양의 석양 빛깔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배에서 내리니 허기가 몰려왔다. 보라카이의 일몰을 뒤로 하고 싱싱한 해산물이 펼쳐진 좌판에서 자신이 먹을 새우나 게, 생선을 직접 고르는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아기 주먹보다 더 큰 새우를 2kg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잠시 후 새콤달콤한 양념을 뿌려 요리한 새우와 필리핀 전통주 탄두아이, 망고주스까지가 식탁에 차려졌다.
나는 그날 알았다. 엄마도 새우를 좋아한다는 걸. 사실 한국에서 큼직한 새우나 꽃게는 저렴한 식재료가 아니다. 내가 어렸던 시절. 수산시장에서 새우나 꽃게를 사올 때면 엄마는 두 아들이 먹기에도 모자란 그걸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지 않았다. 그래서였다. 엄마가 새우를 싫어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둘이 먹기엔 지나치게 많아 보이는 새우구이 앞에서 엄마는 음식 취향을 숨기지 않았다.
그처럼 많은 새우 껍질이 자신 앞에 쌓여있는 걸 그녀는 몇 번이나 보며 살아왔을까? 진원지가 불분명한 슬픔이 밀려왔다. 그랬다. 아들이란 마흔 살이 넘어도 엄마 앞에서라면 철들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엄마'라는 존재가 품고 사는 내밀한 심경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필리핀 여행에서 돌아온 후부턴 한국에서도 가끔 엄마와 새우나 게를 요리하는 식당에 간다. 연인에게는 자주 사줬던 그것들을 엄마에겐 40년 동안 대접해본 기억이 없다는 사실을 반성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