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아 15일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나에게 세월호란?'이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했다. 많은 답변이 나온 단어 순으로 크게 표시, 설문 결과를 시각화했다.
신지수
'나에게 세월호란?' 질문에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은 '아픔'이었다. 전체의 약 15%인 30명이 꼽았다. 3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세월호를 아프게 느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발생한 사고와 충분하지 못했던 구조과정, 그로 인해 발생한 304명의 희생자 앞에서 시민들은 유가족이 느꼈던 고통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였다.
'나에게 세월호란 '같은 아픔'이다'라고 응답한 한 시민은 세월호 참사가 "남의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갑자기 발생한 참사는 자신에게도 언제든 닥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그는 "세월호를 생각하면 희생된 아이들과 부모님의 마음이 그저 남의 일이 아니라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참사의 아픔이 곧 자신의 아픔이 된 이유를 밝혔다.
자신이 참사를 당한 단원고 학생들과 비슷한 나이라 더 고통스럽다는 이도 있었다. 304명의 세월호 희생자 중 단원고 2학년 학생은 250명. 또래의 죽음은 아무래도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아픔'이란 두 글자로 세월호의 의미를 표현한 한 응답자는 "지금 나와 같은 나이의 학생분들이라서 더 시리고 아프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묻을 수 없는 아픔'이라고 세월호의 의미를 담아낸 이도 있었다. 그는 "이해가 돼야 잊을 것 아닌가"라며 "용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참사가 발생한 지 3년이 됐지만 진상규명을 하지 않는 한 아픔은 묻힐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 밖에도 시민들은 '내 생에 가장 큰 아픔', '아픈 손가락', '아픈 부정' 등의 단어로 고통을 함께 나눴다. 이들은 "세상에 진통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하면 마음이 가고 가슴 아픈 그런 것", "내 딸아이를 잃은 것처럼 늘 가슴이 아프다" 등의 이유를 적었다.
'잊지 않겠다', '잊을 수 없다'는 답변 뒤이어'잊지 않다'는 '아픔'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던 답변이다. '아픔'이라고 말한 응답자보다 1명 적은 29명이 자신에게 세월호는 '잊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아직 찾지 못한 가족을 찾아달라고, 어떤 이유로 가족을 잃게 됐는지 원인을 알고 싶다고 말하는 희생자 가족에게 누군가는 '그만하라', '이제는 잊으라'고 얘기하곤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많은 시민은 세월호를 오래도록 잊지 않고 기억해야겠다고 말한다.
'나에게 세월호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라고 쓴 한 응답자는 "'나 하나 잊어도 별 상관없겠지'라는 생각하는 사람이 점점 생겨나면 결국은 기억 속에서 잊히게 된다"며 "그래서 잊지 않겠다고 썼다. 그리고 결코 잊어서도 안 된다"고 했다.
비슷한 의미에서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이라고 표현한 이도 있었다. 그는 "세월호 사건 당시 희생된 아이들은 나와 동갑인이다"라며 "그 아이들의 청춘을 앗아가야 했던 진실이 무엇인지 꼭 밝혀낼 것이고 절대 잊지 않겠다"고 썼다. 참사로부터 1096일째. '세월호 세대'에게 참사는 '아픔'이자,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인, 늘 현재진행형인 다짐인 것이다.
잊을 수 없기에 잊지 못한다는 이들도 있었다. 한 응답자는 세월호 참사를 '잊을 수 없는 기억'이라고 했다. 그는 "2014년 4월 16일. 나는 그날 학교에 있었고 대학 동기들과 함께 충격에 휩싸였던 그 날"이라며 "절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잊을 수 없는 아픔'이라 쓴 또 다른 응답자도 "죽을 때까지 잊힐 것 같지 않은 아픔이어서"라고 덧붙였다.
그 밖에도 시민들은 "누군가 잊는다면 너무 속상하고 마음 아픈 일이기 때문", "우리 기억 속에서 절대로 잊히지도, 있어서도 안 될 것이기 때문", "너무 쉽게 잊는다면 꿈을 갖고 있던 아이들에게 미안해서"라며 세월호를 오래도록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아 촛불집회 참가자들에게 '나에게 세월호란?' 주제로 조사한 설문지.
안홍기
희생자에 대한 미안함과 슬픔을 나타내기도'미안함'과 '슬픔'은 세 번째로 많이 언급된 키워드였다. 각각 13명의 응답자가 세월호 참사를 미안하거나 슬픈 사건으로 기억했다. 어른으로서 미안하고 참사를 떠올리면 슬프다는 답변이 이어졌다.
'나에게 세월호란 '미안함'이다'라고 쓴 응답자는 "기성세대로서 아이들의 참사를 지켜주지 못한 점, 그리고 해결해줄 수 없는 세상을 이대로 방치한 점"이 미안하다며 "아이들아 미안하다"라고 덧붙였다. "어른으로서 이런 사회를 만든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어서",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지 못했다" 등의 답변도 있었다.
희생자 가족들의 고통을 더 많이 나누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이들도 있었다. 한 응답자는 "세월호 참사 후 개인적인 아픔 때문에 많은 부분 함께 하지 못했다"며 "진상규명만이 이 죄책감, 미안함을 속죄하는 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응답자는 "우리가 싸우고 진상 규명을 해야 하나 그것을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이 싸우게 했다"며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세월호를 떠올리면 가장 처음에 드는 감정인 '슬픔'을 솔직하게 드러낸 응답자도 있었다. 이들은 "이해하지 못할 사고가 난 것도 모자라 해결도 못 하는 정부의 대책에 너무 슬픔", "온 세상이 정말 슬펐기 때문", "언니, 오빠들을 생각하면 슬프기 때문", "슬프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고 했다.
3시간에 걸쳐 206명 설문, 세월호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진지한 모습 드러나세 명의 기자가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이들 206명을 만나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모으는 데에는 약 3시간이 걸렸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한 사람당 두 질문에 답변을 작성하는 데 2분 30초 정도씩 걸렸던 셈이다. 환한 오후 5시에 시작한 설문조사는 어둑어둑해지고 촛불이 물결을 이룬 8시가 다 돼서야 끝이 났다. 1시간 남짓 걸릴 거란 예상과 달리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설문지를 받자마자 생각을 바로 써내려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답변자는 설문지를 받고 고민을 하다가 신중하게 답변을 작성했다. 답변을 작성하다 눈물을 보이는 이도 있었고, '세월호 참사를 도저히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다'며 설문에 응하기 어렵다는 이들도 있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참사를 진심으로 기억하고 추모하는 시민들의 마음은 크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설문지를 만들 때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나에게 세월호란? '정지화면' '방향키' '깊은 밤, 꿈' |
'아픔', '잊지않다', '미안함', '슬픔' 등의 말로 자신의 삶에 세월호가 가진 무게를 표현한 시민들이 많았지만, 광장의 시민 한 명 한 명 모든 답변이 특별했다. '숙제'라는 말로 세월호를 정의한 시민은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를 자신의 숙제로 꼽았고, '후회'라고 답한 시민은 '왜 진작에 나라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쏟지 않았는가' 반성했다.
소수 답변이지만 세월호 참사가 갖는 의미를 함축적이고도 독특하게 표현한 사례를 소개한다. 모두 다른 말로 세월호를 정의했지만, 참사를 남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은 같았다.
나에게 세월호란 '정지화면'이다. "참사 당일 뉴스 봤을 때의 모든 상황과 감정이 늘 기억나고 멈춰 있다. 그 후 과정과 지금 광화문에 있는 순간도 똑같을 것이다."
나에게 세월호란 '깊은 밤, 꿈'이다. "어젯밤에도 잠을 자면서 꿈을 꾸었다. 내 아이에게 바닷물이 들어와 (세월호 참사와)같은 경험을 꿈에서 했다. 여러번 비슷한 꿈을 꾸었다."
나에게 세월호란 '방향키'다. "내 삶의 좌표를 설정할 때마다 되새기게 하고 방향을 제시하게 하는 열쇠가 될 것이므로."
나에게 세월호란 '행동의 시작'이다. "직접 행동해서 아니라고 말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나에게 세월호란 '거울'이다. "내 마음을 바라볼 수 있었고, 함께 사는 사람들의 모습도 마주할 수 있었다."
나에게 세월호란 ' ? '다. "왜 구하지 않았을까? 왜 이제 인양했을까? 왜 침몰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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