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한반도 위기설'이 낳은 유신정권... 역사는 반복된다

1971년 대선서 찾아온 위기설, 근거 없지만 표심은 박정희로

등록 2017.04.20 14:28수정 2017.04.2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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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장미 대선'이 성큼 다가온 가운데 최근 SNS에서는 '한반도 위기설'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미국이 북한을 선제타격할 것이라는 게 주요내용이다.

중국 관영 매체 <환구시보>는 지난 10일 "'4월 한반도 위기설'이 나돌고 있다"며 "15일 김일성 생일을 기점으로 북한이 제6차 핵실험도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지난 주말에는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한반도 인근 해역에 배치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국의 북한 공습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확산됐다.

한반도 위기설이 제기되면서 대선 후보들도 발빠르게 논평을 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11일 여의도 당사에서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쟁이 발발하면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위를 걸고 나부터 총을 들고 나설 것"이라며 단호한 의지를 보였다. 안보는 '보수'라고 자처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역시 같은 날 대구에서 "미국이 한국 정부 동의 없이 북한의 선제타격을 하면 전쟁 가능성이 크다"며 "국가 안보에 투철한 철학과 정책을 가지고 있는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위기설' 근거 없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한반도 위기설에 대해 '근거 없음'이라고 일축했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1일 정례브리핑에서 "우리 정부는 미국과 북한·북핵 관련 사안을 두고 긴밀하게 대책마련을 하고 있다"며 "최근 온라인에서 떠도는 '4월 한반도 위기설'은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언론도 한반도 위기설을 '가짜뉴스'라고 규정했다. 이번 사건은 그래서 일종의 해프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대선 국면에서 뜬금없이 불거진 위기설을 보면서 우리나라는 여전히 안보 이슈에 민감하다는 것이 확인됐다.

위기설은 일단 한 풀 꺾인 듯 보이지만, 한반도 긴장이 언제 또 고조될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북한은 신형 ICBM 엔진 지상분출 시험에 성공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무수단과 스커드, 노동 등 사거리별 미사일을 배치한 점도 간과 할 수 없다.


특히 북한은 지난 15일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을 맞아 대규모 열병식을 치렀다. 이에 미국의 유력 언론들은 온종일 빨간 박스와 함께 '북한 군사행동'이라는 자막을 보내며 북한 도발이 기정사실화 됐음을 알렸다.

한반도 위기설이 낳은 '유신정권'


사실 한반도 위기설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선거 국면마다 예고없이 나타난 북풍은 보수진영이 여론을 선점하는데 유용한 도구였다. 1987년 대통령 선거가 한 달 앞두고 발생한 북한의 KAL기 폭파사건을 비롯해 1997년 한나라당이 북한군에게 총을쏴 달라고 협박한 '총평사건', 2012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발언' 진위 논란 등이 대표적이다. 남북한이 대치하는 엄혹한 정치 환경에서 '북한은 타도해야 한다'는 구호 만큼 확 끌리는 메시지는 없어 북풍 논란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가 쓴 '7·4 남북공동성명의 재해석'이라는 논문을 보면, 1971년 대선 국면에서 오늘날과 유사한 한반도 위기설이 어떻게 전개됐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당시 대통령 3선을 노린 박정희 민주공화당 후보는 경쟁자로 급부상한 김대중 신민당 후보를 꺾기 위해 결정적인 '한 방'이 필요했다. 여기서도 북한이 등장했다. 선거 기간 박정희가 내세운 구호는 '북괴의 야욕 앞에 누가 안정된 생활을 지켜줄 것인가'였다. 남북 대치상황을 활용해 극단적 대립을 조장하고 안보이슈를 부각함으로써 표를 얻으려는 전형적인 프로파간다였다.

반면 김대중 신민당 후보는 고착화된 분단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대북정책의 대전환을 제시했고, 남북교류 및 화해협력을 표방하는 등 유화적인 모습을 보였다.

1971년의 '4월 한반도 위기설'은 대통령선거가 다가오면서 절정에 달했다. 대통령 선거가 3일 앞으로 다가온 4월 24일, 국방부는 "북괴가 도발을 획책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전군에 특별경계령을 내렸다. 또 다음날에는 박정희 후보가 '작금의 정세는 마치 6·25전쟁의 전야'라고 발표하는 등 북한의 남침을 기정사실화 했다.

그러나 북한의 특이 동향은 없었다. 김연철 교수는 당시 상황에 대해 "1969년 이후 북한의 무장게릴라 침투 도발은 확실히 감소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국제사회에는 데탕트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닉슨 미국 대통령은 한반도 정세의 안정을 원했고, 박정희 정권에게는 남북대화를 주문했다. 미·중·소 삼각 외교를 위해 중국과의 관계 개선도 추진했다,

선거는 초접전 양상을 보였지만 결과는 박정희 630만(53.2%), 김대중 530만(45.2%)표로 나왔다.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민주화세력은 또다시 광야로 내몰리게 됐다.

그러나 박정희의 한반도 위기설은 '근거 없음'으로 밝혀졌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1971년 12월 미국이 "박정희 대통령이 북한의 남침 위협을 근거로 강력한 통제와 국민 희생을 정당화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남북분단과 권력이 어떻게 공생하는지 민낯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간선제로 바뀐 1972년 대선도 승리한 박정희는 '국책사업의 안정적 이행과 평화통일을 위한 안정적 국정유지'를 명분으로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 해산과 함께 '10월 유신'을 선포했다. 남북한의 극단적 대립을 조장해 권력을 쥔 박정희는 이렇게 유신정권을 탄생시켰다. 

냉철한 시각으로 바라볼 때

 지난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 모습.(출처=국무조정실)
지난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 모습.(출처=국무조정실)국무조정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박정희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면 한국 역사는 다르게 전개됐을 가능성이 높다. 국제사회의 데탕트 분위기를 적극 활용해 남북관계를 개선시키고, 통일한국을 꿈꿨을지도 모른다.

그런측면에서 한반도 위기설은 우리의 꿈과 이상을 뭉개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여기에는 남북분단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수구세력의 비열함이 가장 큰 문제다. 한반도 문제를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한 국민의 잘못도 일정 부분 있다고 본다. 한반도 위기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불거진 '4월 한반도 위기설', '전쟁설' 역시 40여 년 전 대선 국면과 매우 흡사하다. 물론 수구 보수세력의 몰락과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구속된 상황에서 치러진 선거라는 점은 차이가 있지만 향후 정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5월 장미대선이 성큼 다가왔다. 국민들의 마음도 어느 때보다 초조해지고 있는 요즘. 보다 냉철한 시각으로 대선 국면을 지켜봐야 할 때다.  
#대통령선거 #한반도 위기설 #4월 한반도 위기설 #남북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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