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나라에 간판 걸 때까지
달나라이용원은 문을 닫지 않는다

55년여 역사의 충남 예산군 '달나라이용원'

등록 2017.04.30 20:20수정 2017.04.3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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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학교를 떠나야 했다. 집안형편이 어려워져 생활전선으로 가야했기 때문이다. 기술을 배워야 했다. 양복과 이발, 두갈래 길에서 이발을 선택했다. 충남 예산군 예산읍내 시장 안쪽에 있는 충남이용기술학원에 들어갔다.


1년도 안돼 학원은 문을 닫고, 남신이용원으로 상호가 바뀌었다. 그래도 줄곧 그곳에서 일하며 이발기술을 배웠다. 하지만 쉽게 배워지는 기술이 아니었다. 무서운 선배들 틈에서 '맞아가면서' 배웠고, 1968년 열아홉살 되던 해 이발기술면허(현재 국가기능사자격증)를 땄다. 충남 최연소 면허소지였다.

면허를 땄다고 일번 가위를 잡을 수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남신이용원에서 보조원으로 일하면서 월급으로 600원을 받았다. 당시 이발요금은 40~50원이었다.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엄동설한에도 새벽부터 물을 길어 청소를 하고, 이발가위와 면도칼을 간 뒤에는 손님들 머리를 감겼다. 명절 때면 허리 한 번 못펴고 손이 부르트도록 일을 했다.

그렇게 함바(중간기술자)가 돼 가위를 잡았고, 어린애들 머리부터 깎기 시작했다. 일광이용원(예산읍 동흥대반점 맞은 편)을 거쳐 동일이용원(예산읍 임성로사거리)으로 옮기며 10여년 남의 집 밥을 먹었다.

보조원 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도 내 이발관을 갖는다는 희망 때문에 넘을 수 있는 고생길이었다. 1960~70년대만 해도 이발관은 성업이었다. 돈도 벌고 사장 소리 듣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이발가위를 잡기까지

 이승순 사장이 달나라이용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승순 사장이 달나라이용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무한정> 이재형

중학교를 자퇴하고 이발기술을 배운 소년은 그렇게 청년으로 장성했고, 스물다섯이 되던 해 그가 처음 일을 배운 남신이용원을 인수해 꿈을 이뤘다. 그리고 4년 뒤 1979년 4월 25일 달나라이용원(충남 예산군 예산읍 예산리 223-3, 원래 자리는 흥농종묘 코너)을 권리금 50만 원을 주고 제대로 인수했다. 지금의 달나라이용원 이승순(68)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50년 넘도록 이 일을 했어요. 한 때는 양복장이의 길로 갈 걸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발장이를 한 게 얼마나 잘한 일인지 몰라요. 양복점이 먼저 사양길로 접어 들었잖아요? 죄다 기성복 세상이 돼 버렸으니까."

50년 한가지 일을 했으니 그의 말대로 "머리만 만져봐도 어떻게 깎아야 할지 바로 떠오른다"고 한다.

그런데 이발관 상호가 참 재미있다. 아마도 전국 이발관에 이렇게 독특한 간판은 없을 듯하다. '달나라이용원'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참 잘 어울리는 상호다. 더구나 1960년대에 이렇게 기발한 상호를 생각해낸 사람은 누굴까.

"1962년 문을 연 달나라이용원의 첫 주인은 김교문씨였어요. 수단도 좋고 이발솜씨도 대단했던 분이예요. 그 분 외모가 꼭 외계인처럼 생겼는데 그래서 '달나라'로 지은 것 같아요. 그 분은 서울로 떠난 지 오래돼 생사를 알 수 없고, 김정갑씨가 1972년부터 75년까지, 그리고 박용서씨가 1979년까지 운영하다 그 해 내가 인수했지요."

1980년대 초까지는 손님들이 참 많았다고 한다. 읍내시장에 고추전과 소전이 설 때만해도 장날엔 인산인해를 이뤘다. 인근에서 예산장이 가장 컸으니 오죽했을까.

"사람이 얼마나 많았냐면, 요 앞 창고집에서 장날 하루에 막걸리 대두 70통을 팔 정도였어요. 술 먹고 개울로 떨어지는 사람도 있었고(하천 복개 전) 시골 아줌마들 주머니 노리는 쓰리꾼들까지 원정 왔었으니까."

이사장은 잠시 옛날을 회상하고는 "시장 상권을 살리려면 최소한 고추전이라도 공설운동장에서 열지 말고 시장 안으로 들여놔야 한다"고 조언을 했다.

오른손 엄지가 더 굵다

 가위로 신중하게 손님머리를 다듬고 있는 이승순 이발사의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가위로 신중하게 손님머리를 다듬고 있는 이승순 이발사의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무한정보>이재형

이발관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 얘기도 들려준다.

"지금은 주인 혼자서 하지만 한창 시절엔 보통 3~5명이 있었어요. 주인 밑에 기술자 한 명, 함바 2명, 시다 1명이 있어도 쉴틈없이 바빴죠. 예농운동장에 입대하는 장병들 1000명 정도가 집결할 때면 눈코뜰새가 없었어요. 기술자 한사람당 30명씩 깎는데 요즘같이 기계가 전동식이길 하나, 완전 수동 바리깡으로 깎으려면 손에 쥐가 날 정도였죠. 우리는 그래서 바른손 팔뚝과 엄지손가락이 더 굵어요."

그가 양쪽 손을 비교해 보여준다.

요즘은 이발을 배우려는 젊은이가 거의 없다고 한다. 예산읍에서 50년 이상 경력의 최고참이 암하리회관 옆에 있는 이명기씨가 운영하는 암하이용원이고, 막내는 역전에서 오가사거리로 가는 길에 있는 예산이용원이다.

"한참 시절엔 돈도 많이 벌었겠다"고 물으니 "늘 호주머니에 돈이 들어있다보니, 모으기보다는 술 사먹고 그렇게 저렇게 쓰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래도 자식 3형제 대학·대학원까지 졸업시키고 좋은 직장 잡고 잘 살고 있으니 그게 남은 거라며 웃는다.

머리를 깎는 유형도 가지가지다. 일반적으로 '상고머리'하면 직업군인 머리모양이고, '스포츠머리'는 말그대로 운동선수같이 짧은 머리이며, 보편적인 형태는 '하이칼라(2:8, 3:7 가르마)'다.

70년대 초까지 재미있는 머리형태가 있었는데 '3·8식'이라고 해서 3할을 완전 삭발하고 나머지는 옆으로 빗어 넘기는, 말하자면 요새 멋부리는 젊은 애들과 비슷한 형태다. 유행이라는 게 참 묘한 것 아닌가.

머리에서 이가 '술술'

고데머리는 무쇠로 만든 고데기를 연탄불에 달궈서 지졌다.

"손님들 중에는 고데를 하고 나서 풀릴까봐 한 달 동안 머리를 감지 않고 오는 사람도 있었어요. 머리카락을 만져보면 바삭바삭하고, 함석으로 만든 조루로 물 뿌려가며 머리를 감기면 이가 술술 쏟아져요. 허허"

까다로운 손님도 간혹 있다.

"한 번은 젊은 분이 아내와 함께 왔는데 (아내가) 얼마나 참견을 해대는지 내가 움직이는대로 쫓아다니며 잔소리를 하길래 깎다 말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보낸 적도 있어요."

 이승순 사장이 지난날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승순 사장이 지난날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무한정보> 이재형
이발업은 80년대로 들어서며 사양길로 접어든다. 두발이 자율화 돼 손님이 급속히 줄더니, 미용실이 늘고 남자손님들도 거기로 발길을 돌렸다.

'좋은 시절이 있으면 나쁜 시절도 있는 법' 이 사장은 낙심하지 않는다.

"어렵다고 해도 수십년 넘은 단골이 있고 젊은 사람들 중에도 진짜 멋쟁이는 이발관을 찾아요. 어떤 손님은 '제발 나 정년할 때까지는 문을 닫지 말라'고 사정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예요."

그리고 달나라이용원에는 에이에스(AS)라는 게 있다.

"수십년 단골손님이 거동이 불편해 못나오시는 거예요. 몸이 아파 누워 있어도 머리는 깎아야잖아요. 제가 이발도구 챙겨들고 갑니다. 그리고 무료로 깎아 드리지요. 고객에 대한 예의예요. 나와의 약속이기도 하고…"

시설과 기계가 현대화 되고 벽에 걸려 있던 밀레의 <만종>, <이삭줍기>, 젖을 빨고 있는 새끼돼지 같은 그림액자가 사라졌어도, 여전히 이발관은 허심탄회한 대화가 오가고 이웃과 주변 소식들이 쌓이는 문화사랑방이다. 그리고 신분의 높고 낮음, 돈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모두가 똑같은 의자에 앉는다.

"별사람들이 다 오지요. 어떤 때는 공직에 있는 분들이 여론을 들으러 오기도 하고…. 그래서 이 직업은 입이 가벼우면 안돼요. 나가면 안될 얘기, 모두에게 알려야 할 말, 잘 구분해야지 안그러면 손님 다 떨어져요. 내 신조가 우리집에 오는 손님은 똑같이 잘 대해주고 정확한 말이 아니면 전하지 않는 것이예요."

언제까지 일을 할 계획인지 물으니 이렇게 답한다.

"60세까지만 하려고 했는데 70세로 늘어났어요. 오랫동안 오신 단골들이 자기가 죽을 때까지 머리 깎는 거 책임지라니 어떻게 해요. 아직까지는 자식한테 손 안 벌리고, 손자들 용돈 주고, 여러분들이 찾아오시니 심심치 않고 한참 더 해야할 것 같아요."

50여 년 세월을 한결같이 손에서 가위를 놓지 않은 이 사장은 아침 출근할 때마다 두가지를 다짐한다고 한다. '일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즐기자' '오늘도 좋은 일 한가지쯤 하자'

인류가 진짜로 달나라에 도시를 건설해 간판을 걸 때까지 달나라이용원이 문을 닫지 않고 대를 이어 영원하길 기원해 본다.
덧붙이는 글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와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이발사 #이발소 #이발관 #바리깡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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