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를 하던 날. 두 아이는 곁에서 제 심부름을 했고, 마지막에 접시에 옮긴 뒤에는 잡채 접시를 나릅니다.
최종규
어린 날을 더듬어 보면, 어머니는 하루 내내 집에서 수많은 집일을 도맡고 집살림을 꾸리셨어요. 어머니는 한 해 내내 집을 비울 수 없었고, 집을 비울 틈이 없었다고 할 만해요. 밥이며 빨래이며 청소이며, 꽃그릇을 건사하고 곁일을 하고 두 아이 숙제를 보아주고, 새벽부터 밤까지 쉴 겨를이 없습니다. 이동안 아버지는 집 바깥에서 돈을 버는 일을 합니다.
아주 드물게 어머니가 한동안 집을 비워야 하는 일이 있곤 합니다. 아침 일찍 나가셔서 밤 늦게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일이 생깁니다. 아마 어머니네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일이 생겨서 서둘러 다녀와야 하는 일이었겠지요. 어떤 일 때문에 바삐 다녀오셔야 했는지는 얘기를 들려주지 않으셔서 모릅니다만, 어느 일요일이었어요. 이날은 아버지가 두 아이 끼니를 챙겨 주어야 했어요.
열세 평짜리 작은 집이건만 아버지는 부엌이 낯섭니다. 이 조그마한 집에서조차 아버지는 부엌으로는 거의 걸음하지 않았어요. 칼이 어디에 있는지 도마는 어디에 있는지, 밥솥은 어디에 있고 쌀은 어디에 있는지 하나도 모르십니다. 수저가 어디에 있는지마저 모르십니다. 저하고 형은 으레 어머니를 곁에서 도왔으니 이것저것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이것은 여기에 있고 저것은 저기에 있다고 알려 드립니다.
그러나 막상 아버지는 쌀이며 밥솥이며 조리이며 다 찾았어도 어떻게 밥을 지어야 하는가를 모릅니다. 아버지는 끝내 '밥하기는 두 손 들어'요. 밥은 아무래도 못 하겠다고 여긴 아버지는 라면을 끓이기로 합니다. 그러나 라면이 또 어디에 있는지 모르시지요. 형하고 제가 라면이 어디 선반에 있다고 알려줍니다. 냄비는 어디에서 꺼내야 한다고 알려줍니다.
아버지는 라면 봉지 뒤쪽에 적힌 '라면 끓이는 법'을 한참 읽습니다. 그러나 한참 읽으시다가 '라면 끓이기도 두 손 들어'요.
"얘들아, 우리 중국집에 시켜서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