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 시스템새해 첫 근무일에 신 영업 시스템이 오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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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는 고객 상담과 서비스 관리를 위해 전산 시스템을 구축하여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용하던 프로그램이 오래됐고 회사는 그 이후 더 많은 서비스군을 만들어 냈기 때문에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게 됐다. 그래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새로운 영업 시스템 구축에 들어갔다.
'신 영업 시스템'이라는 프로젝트명으로 시작된 그 일은 시스템 오픈 이후 많은 후폭풍을 몰고 왔다. 애시당초 전사가 사용할 전산시스템을 개발하는데 영업과 관련된 인원과 전산개발 담당자들로만 TF(Task Force)가 구성됐고 그 외 간접부서 인원들은 프로젝트에서 배제된채 진행됐다.
당시 나는 기술부서에서 '장비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그 일은 다른 기술부서 사람들과 달리 영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이었다. 회사의 서비스 자체가 고객에서 장비를 설치해줌으로 인해 제공될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에 장비 역시 시스템과 맞물려 가용이 됐다. 장비관리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 시스템과 영업시스템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지만 그 관계를 아는 사람들은 현업에 오롯이 장비관리 담당자들밖에는 없었다.
회사에 장비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은 각 지역 영업본부 100여명의 직원중 3명 내외였다. 전사가 다 동일한 상황이었고 장비관리 업무가 영업부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원업무였는데도 조직의 구성상 기술부서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이 직무는 회사 내에서 철저히 무관심의 대상이 되는 업무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많은 직원들이 이 직무를 하찮게 여기거나 기피하는 업무였다.
나는 입사당시 대학을 아직 졸업하지 못한채 '고졸사원'으로 입사를 했다. 그래서 이런 비인기 직무를 담당하게 됐고 그로부터 5년을 이 일만 해왔다. 사람들은 기피하는 비인기 직무이지만 나는 그안에서 나름대로 많은 혁신을 이루어 냈으며 이 직무 분야에서는 전사적으로도 실력을 인정 받는 사원이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그 직무분야 내의 일이었고 영업본부 내에서 이 직무는 여전히 찬밥이었다.
신 영업 시스템 오픈을 앞두고 대략의 매뉴얼이 공개됐을 때 나는 장비관리 시스템과의 호환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음을 알게됐다. 그래도 시스템을 오픈했다가는 업무가 마비될거라고 본사 전산부서 담당자에게 이야기했지만 그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존에 계획됐던 범위내에서 지정한 날짜에 시스템을 오픈해야한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시스템 오픈일은 새해 첫 영업일인 1월 2일로 잡혔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12월의 마지막 근무일 저녁 본사 전산실 담당자에게 '시스템 오픈을 보류하라'는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처럼 새해 첫 출근과 동시에 회사의 업무는 마비가 됐다.
새해 첫 출근... 모든 업무가 마비됐다예상대로 신 영업시스템과 기존 장비관리 시스템이 호환되지 않아 현장의 기본 업무인 서비스 개통부터 장비와 관련된 모든 업무가 마비됐다. 장비와 관련된 모든 업무란 곧 회사의 서비스와 관련된 모든 업무를 이야기 했다. 나는 이미 그 일을 예상했기에 천천히 문제가 발생된 현황과 시스템 문제로 인해 사용하지 못하게 된 장비의 현황을 뽑아 보고했다.
신 영업 시스템 오픈 2시간만에 각 지역 본부장실에서는 '콘퍼런스 콜(전화회의)'을 통해 긴급 상황실이 개설됐다. 하지만 상황실에서는 원인도 파악하지 못했다. 이유는 영업 관련된 부서의 담당자와 팀장, 본부장이 주축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시간 뒤 내 보고를 들은 본부장님은 나를 상황실로 호출했다.
본부장님은 나에게 직접 현황을 설명하고 예상되는 조치방안에 대해 이야기 하라고 하셨다. 그 상황실안에는 대표이사부터 전사 임원, 각 지역별 관련부서 팀장님들까지 주요한 사람들이 모두 접속해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을 잘 알기에 살짝 긴장되긴 했지만 나는 이내 말을 꺼냈다.
"지금 발생한 상황은 신 영업 시스템과 장비관리 시스템의 호환 문제로 인해 일어난 현상입니다..."나는 콘퍼런스 콜 전화기 앞에서 차근 차근 파악한 내용을, 장비관련 업무를 모르는 사람도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풀어서 설명을 했다. 그리고 지난번 장비관리 시스템 개발 당시 프로세스 설계 담당자로 본사 전산부서에 파견 나갔을 때 익힌 지식을 동원해 예상되는 해결방안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현장의 업무가 모두 올스톱된 긴박한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은 내 이야기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고 반나절이 지났을 무렵부터 완벽하진 않지만 조금씩 현장의 업무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도 긴급 상황실은 약 한달동안 운영 됐고 본부장님은 상황실에서 중요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를 찾아서 함께 미팅을 하곤했다.
인생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