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범 수석 뒤에 있는 그 누군가, 그 이름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누군가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김창근 SK이노베이션 회장)."
SK그룹 임원들이 청와대가 요구한 89억 원의 배후를 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15일과 16일에 걸쳐 박 전 대통령의 SK 관련 혐의(제3자 뇌물요구)를 집중 심리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SK그룹의 현안 해결을 대가로 K스포츠재단 등에 89억 원을 지원하도록 요구했다는 공소사실을 판단하기 위해 이형희 SK브로드밴드 대표와 김영태 SK 부회장, 김창근 SK이노베이션 회장을 불러 증인 신문을 진행했다.
이들에 따르면 최태원 SK 회장은 2016년 2월 16일 박 전 대통령과 단독면담 전 CJ헬로비전 인수 합병과 면세점 사업 재승인, 최재원 부회장 가석방 등 그룹 관심사가 담긴 자료를 준비했다. 이 문건을 들고 박 전 대통령을 만난 뒤 최 회장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으로부터 서류 봉투 하나를 건네받는다. 이 안에는 정현식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 명함과 '가이드러너' 사업 내용 등이 담겨 있었다.
며칠 뒤 SK는 K스포츠재단에 연락했다. 그런데 K스포츠재단은 SK에 거침없이 비덱스포츠의 해외 전지훈련비 등 89억 원을 요구했다. 16일 김영태 부회장은 보고를 받고 "거기가 출연한 지 얼마 안 됐고, 해외전지훈련비용이 얼마인지 아는데 과도한 요구를 하는지 내역을 따져보라고 했다"며 "안 전 수석에게 '정권이 바뀌면 청문회감'이라고 전하라고도 했다"고 말했다.
SK 임원들은 청와대의 K스포츠재단 지원 요구가 납득하기 어려웠다며 이 일을 박 전 대통령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털어놨다. 김 부회장은 "안 전 수석과 창조경제혁신센터부터 1년 가까이 일했지만 단 한 번도 개인적인 일을 전달한 적이 없었다"며 "K스포츠재단을 만들 때 대통령 관심사항이란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지원 요구도 그렇다고 짐작했다"고 말했다.
이형희 대표는 "대관업무를 장기간 담당했지만 청와대로부터 특정 개인 업체 지원 요청이나 관련 서류를 직접 받은 경험은 없었다"며 "고민이 많이 됐다"고 했다. 차일피일 지원이 늦어지자 안종범 전 수석은 이 대표에게 연락해 "박영춘 전무(SK쪽 실무자)가 너무 빡빡하게 군다"며 "대통령이 관심 갖고 지시한 사안인데 잘 살펴봐달라"고 재촉하기도 했다.
하지만 SK는 89억 원이라는 액수도 액수지만, 이 가운데 50억 원을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독일회사 코어스포츠로 직접 송금하라는 K스포츠재단 요구 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안 전 수석 쪽에 '우리가 직접 관여하기 어렵다'고 알렸다. 이후 SK는 CJ헬로비전 인수 등에 실패한다. 그러나 김영태 부회장은 "당시 섭섭한 감이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K스포츠재단 등에) 연결되지 않은 게 맞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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