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에서 생활하며 산을 깎아 건물을 짓는 형제복지원 원생들. 3년 6개월 동안 건물 약 18채가 세워졌지만, 단 한 푼의 임금도 받지 못했다.
형제복지원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
보호자 없는 10살 소년에게 서울역은 무서운 곳이었다. 고사리손을 노리는 검은손이 곳곳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따닥'하는 소리가 나자 소년 홍장희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넝마주이가 들고 다니는 집게가 그의 머리를 강타한 것이다. 넝마주이는 다짜고짜 소년의 뒷덜미를 잡아끌었다. 소년이 "왜 그래요, 왜 그래요" 하며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자 넝마주이는 자신의 발뒤꿈치로 소년의 발등을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소년은 아픈 발을 만질 새도 없이 깨금발을 한 채 넝마주이 손에 질질 끌려갔다.
소년이 끌려간 곳은 서울역 앞 창녀촌 인근에 있는 근로 재건대 4소대라는 넝마주이 본거지다. 까불이라는 별명의 넝마주이가 대장이었다. 앵벌이 소년·소녀와 넝마주이 40여 명이 기거하고 있었는데, 소년에게 그곳은 아주 낯선 세상이었다.
"앵벌이를 나가기 전에 교육을 하는데, 외울 게 정말 많았어요. '어머니는 날 낳으시고 3일 만에 죽고...' 42년이 지났는데도 잊히질 않아요. 이거 한 다음에 '타박네야' 같은 노래 몇 곡 부르고, 그 다음에 손을 내미는 거지. 부끄럼을 떨치게 하려고 일주일 넘게 소주를 한 대접씩 강제로 먹였는데, 토하고 세상이 빙빙 도는 경험을 반복하게 되면 그 일(앵벌이)이 꼭 100년 전부터 내가 했던 일처럼 익숙해져 버려요." 앵벌이에게는 할당이 있었는데, 하루 5천 원이었다. 그 돈을 바치지 않으면 몽둥이가 날아왔다.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고 발을 주로 때렸는데 발바닥도 아프지만, 발가락, 특히 새끼발가락을 맞을 때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소질이 있었는지, 소년 홍장희는 돈을 아주 잘 버는 앵벌이로 커갔다. 그가 구슬픈 멘트를 날리고 노래를 부르면 한 달 내내 공장에서 먼지 마시며 번 돈을 봉투째 손에 쥐여주는 누나도 있을 정도였다. 차마 그 돈을 받을 수 없어 '주지 말라'고 속삭였다가 감시자인 '야방이'에게 들켜 일주일 내내 죽도록 맞은 적도 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절제해야 했다. 덜 슬프게 이야기하고, 덜 슬프게 노래하는 절제를.
12살 어린 나이에 몸을 팔아야 한 앵벌이 소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