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별로...' 조선시대 관직도 '외모지상주의'?

세조에게 외모 지적받은 문인의 원망 담긴 시 '미인행'

등록 2017.07.09 21:14수정 2017.07.09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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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윤복의 미인도
신윤복의 미인도간송미술관

춘추시대 때 서시는 얼마나 미인이었던지 물고기들이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헤엄치는 것을 잊어버려 강바닥으로 가라앉았고, 한나라 때 왕소군은 날아가던 기러기가 그 모습에 넋이 나가 날갯짓을 잊어버리고 땅위로 떨어졌다고 한다. 물고기가 가라앉고 기러기가 떨어졌다는 뜻의 침어낙안(沈魚落雁)은 폐월수화(閉月羞花)와 함께 이른바 미인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됐다.


그러나 침어낙안이 처음부터 미인을 뜻하는 말은 아니었다. 장자는 <제물론>에서 모장과 여희가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미인이지만 물고기는 그녀들을 보면 깊이 숨어버리고, 새는 그녀들을 보면 하늘 높이 날아가 버린다고 했다. 침어낙안은 본래 천하의 미녀인 모장과 여희도 사람의 눈에나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물고기나 새의 입장에서야 한갓 괴물에 불과하며,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결국 상대적인 개념에 불과함을 설파하기 위한 우화였던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장자가 아무리 지하에서 한탄한들 이미 변해버린 말뜻을 무슨 수로 되돌릴 수 있겠는가? 외모에 집착하지 말라고 한 말이 도리어 그것을 부추기는 꼴이 되고 말았으니.

우리 선조들이 남긴 글 속에서도 외모지상주의의 흔적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초기 시인이자 문신이었던 성간(成侃)은 외모가 추했으나 집현전에 연회가 있을 때면 반드시 그를 청하여 좌객으로 삼았다. 이때부터 외모가 추한 사람을 좌객(座客)이라 했다.

또, 세조가 책시(策試, 정치에 관한 계책을 물어서 답하게 하던 과거시험 과목)하면서 성간을 보고 웃으며 말하기를 "네 비록 재주는 있으나 외모가 심히 추하니, 다른 직책을 맡는 게 낫겠다. 승지는 나와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하니 반드시 불가하다"고 했다. 성간을 일러 어람좌객(御覽坐客)이라 한다.

이륙의 <청파극담>에 나오는 얘기다. 성간은 비록 재주가 출중하였으나 외모가 추하다는 이유만으로 승지가 되지 못하고 전농직장(典農直長)에 제수되었다. 이후 집현전 박사로 전직하여 장서각에서 독서에 몰두하다가 1452년(세조2) 집현전이 폐지돼 사간원 좌정언으로 옮겼으나 나아가지 못하고 병으로 죽었다. 이 때 그의 나이 서른 살이었다. 그의 죽음을 두고 세조는 '동방에 문성(文星)이 없어졌다'고 애통해 했다지만, 그 억울함이 어찌 만분의 일이나 풀렸겠는가?


성간의 시는 <동문선>, <청구풍아>, <국조시산>, <대동시선> 등에 수록돼 있고, 특히 중국의 사신이 그의 시를 보고 "조선의 문장이 중국보다 못하지 않다"라고 탄복했다고 하니, 이는 대개 그의 시풍이 성당(盛唐)의 두보를 따른 데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두보의 사회시(社會詩)와 마찬가지로 성간 역시 지배계층이 아닌 백성의 입장에서 그들의 고단한 삶을 노래하고 있다. 성간은 당대에 비록 외모 때문에 불이익을 받고 사람들의 놀림거리가 됐으나, 그의 빼어난 문학적 성취는 오늘날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비오는 날 아침, 그의 문집을 뒤적이다 보니 문득 <미인행>이라는 노래가 눈에 띄었다. 어쩌면 진정한 미인을 몰라보는 세태에 대한 원망의 은유였는지 모르겠다. 성간의 문집으로는 <진일유고(眞逸遺藁)>가 있다.

미인행

후원의 까마귀 까악까악 우는 소리에
미인은 잠을 깨어 양 눈썹 찡그리네
새로 배운 노래 비파에 실어 읊조리니
좋은 시절 즐기라는 <백저가>이네
그리운 마음, 홀로 사창에 기대서서
붉은 입술 깨무니 시름도 많아라
은 등잔 마주 하니 눈물이 강같이 흐르는데
겨울 나뭇잎 같은 운명, 얼굴은 꽃처럼 붉네
석양에 서성이며 임 계신 곳 헤아려보지만
어쩌겠는가, 새장에 갇힌 앵무새인 걸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h2ony/221044794194)에도 실렸습니다.
#모이 #미인도 #미인행 #성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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