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9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운데)가 경기도 광명시 유세에서 이언주(왼쪽), 백재현 후보와 손을 맞잡고 총선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유혜준
선거기간 동안 'OUT! MB정권 4년 전재희 18년'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지역구에 걸었다가 선거 막판 '막말'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1994년 관선 광명시장을 시작으로 지역구에서 18년간 경력을 쌓은 새누리당 전재희 후보를 겨냥한 표현이었지만, 전 후보가 실제로 지역구에서 시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기간은 13년 6개월 정도였기에 욕설을 연상시키는 '노이즈 마케팅'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2012년 민주당 대선 패배 후 '비문재인' 색채 강해져그러나 논란은 선거 승리와 함께 가볍게 가라앉았다. 이 의원은 2012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30,40대 유권자들이) 내게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엄마이자, 아내이자, 딸이자, 며느리' 이런 느낌을 받은 것 같더라"고 승리 요인을 내놓았다.
2012년 12월 대선 당시 이 의원의 행적에 대해서는 민주당 내에서 평가가 분분하다. "초선 의원으로서 유세장에서 안무도 열심히 하고 누구보다 후보(문재인)를 위해 열심히 뛰었다"는 호평과 "문 후보 부인과 지역구를 함께 돌 기회가 있었는데 부인은 젖혀놓고 '지역구 이언주 의원입니다'라고 유권자들에게 자기 먼저 소개하더라"는 악평이 함께 나오기 때문이다.
막상 그해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하자 "이번 대선에 책임이 있는 세력(친노친문)이 다시 당권을 쥐겠다고 나서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하게 됐다. 이후 그는 김한길·이종걸 등과 함께 민주당 '비문재인 세력'으로 분류되게 된다.
"(주승용 최고위원이) 사퇴할 것처럼 해놓고 공갈치는 것이 더 문제"라는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 발언으로 당내 계파 갈등이 한층 고조된 2015년 5월 8일에는 "주승용은 유일한 호남 지역구이며 비노계 최고위원이다. 정당의 최고위원이 선배 최고위원에게 감당할 수 없는 막말을 퍼부었다는 사실은 차마 믿기 어려울 지경"이라고 정 최고위원을 공격했다(정 전 최고위원은 이언주 발언 논란이 불거지자 11일 트위터에 "가식적인 사과는 사과가 아닙니다. 대선때처럼 '국민이 이깁니다' 팻말들고 울면서 사과하세요"라고 비꼬았다).
이 의원의 민주당 탈당은 길지 않은 그의 정치이력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국민의당이 안철수 대통령후보를 선출한 다음날(4월 5일) 아침부터 "이 의원이 곧 탈당할 것"이라는 얘기가 국회에 돌기 시작했다. <오마이뉴스> 기자가 이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 탈당하나요?"마음이 기울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안철수로는 대선 어렵겠다'고 생각했는데 엄청나게 성장했더라. 한 번 더 희망을 걸어볼 만하지 않나 생각한다."
이 의원의 처지에서는 2016년 국민의당 창당 국면에 합류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고 한다. 비호남권 의원 20여 명이 동반탈당을 논의하는 와중에 문재인 당시 대표가 전격적으로 대표직을 김종인에게 넘기면서 기회를 놓쳤다는 설명이었다.
'김종인 비대위' 체제에서 소속 당이 총선에 이기고, 자신도 재선에 성공했지만 마음을 둘 곳을 찾지 못했다. 같은 해 8월 경기도당 위원장 선거에 출마했지만 '문재인 핵심측근' 전해철 의원에게 더블스코어에 가까운 격차로 완패했다.
최순실 사건으로 인해 조기 대통령선거가 확정되고 민주당이 후보 경선으로 달아오른 연초에 김종인 전 대표가 의원직을 던지고 탈당했다. 그와 가까우면서도 경선 캠프에 참여하지 않은 민주당 의원들 일부는 결국 당을 떠날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는데, 이 의원과 최명길 의원이 탈당계를 내고 국민의당으로 옮겼다.
이 의원은 안철수 선대위의 뉴미디어본부장으로 활약했지만, 선거 결과는 그의 기대와는 정반대였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원내수석부대표로 중용됐지만, 새 정부와의 기 싸움에 선봉에 선 이 의원은 자주 구설수에 오르내렸다.
인사청문 정국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에 대해 "물건이 너무 하자가 심해 도저히 팔아줄 수 없는 딜레마에 봉착했다"(5월 26일)고, 강경화 외교장관에 대해 "지금은 안보 현안이 중요한 만큼 이번에는 국방을 잘 아는 남자가 해야 한다"(6월 6일)고 한 발언이 문제가 됐다.
'스스럼 없는 소통방식'이 급식노동자 발언을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