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파수꾼>의 한 장면
이정혁
선거의 계절이 돌아오면,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이리떼에 대한 공포가 어김없이 생겨난다.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몸에 익은 듯 눈과 귀를 막고 한 방향만 쳐다본다. 이리떼로부터 보호해주고, 지금의 살기 좋은 새마을을 만들어 냈다는 누군가의 동상은 마을 사람들을 단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리떼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해서 나타나는데, '안보', '경제' 그리고 '지역주의'의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안보의 위협부터 들여다보자. 좌파, 종북, 진보라는 용어는 마을 사람들에게 강한 공포심을 유발한다. 6.25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젊은 층들도 마찬가지다. 좌파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그저 '빨갱이'라는 말이 전부다. 그 이상의 철학과 깊이는 없다. 형체도 없고 개념도 없는 보수에 의문을 제기하면 모두 좌파고 종북으로 낙인찍힌다.
안보라는 이름의 이리떼는 효과가 즉시 발현되고 파급력이 막강하다. 촌장 자리를 노리는 권력의 하수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시도 때도 없이 꺼내서 흔드는 이유다. 문제는 거기에 속고 또 속는 마을 주민들이다. 사드 배치는 반대하면서도 투표율은 보수정당이 압도적으로 나오는 기이한 현상, 미스터리하다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두 번째는 지역경제라는 이리떼다. 스스로 보수라 칭하는 작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정권이 바뀌면 우리 마을은 망한다고.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는 하던 사람이, 하던 당이 해야 한다고. 지켜내는 것이 바로 보수라고. 허나 지난 십 년, 보수를 내세운 지역 출신 대통령 두 명이 나라를 맡는 동안 경기가 회복되었다거나 마을이 잘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단 한 명에게도 듣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경제라는 이리떼로 인해 득을 보는 건 늘 그렇듯, 개발에 대한 기대를 이용하는 투기 세력들이었다.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나고, 뛰어오른 임대료로 소상공인들이 하나씩 쓰러져갔지만, 자신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의 탓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 정도나마 밥이라도 먹고 사는 게 다행이지, 정권이 바뀌면 우리는 폭삭 망한다"는 말을 하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선거가 돌아오면 불만도 후회도 없이 같은 자리 같은 인물에 도장을 찍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지역주의'라는 이리 떼를 십분 활용했다. 전 정권의 실세였던 자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우리가 남이가'. 지역주의는 그 어떤 장벽보다 견고했다. 어느 때는 이리떼보다 더 경계하고 증오하는 대상이 이웃마을 사람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독재 정권이 만들어낸 허상에 누구보다 강하게 세뇌당한 마을이 TK마을이었다.
지역주의를 단순히 TK마을의 문제만으로 국한시킬 수는 없다. 사실, 지역주의를 조장하고 악용하는 일부 통치 세력들이 원흉이다. 그럼에도 TK마을의 지역주의가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렇다 할 명분이 없는 지역주의기 때문이다. 5.18의 아픔이 배어 있는 타 지역과는 달리 TK마을의 지역주의는 차라리 배타주의에 가깝게 느껴진다. 실리만을 위해 울타리 안에서 똘똘 뭉치는 그네들의 모습은 때론 슬프고 때론 비겁하다.
'희곡'과 현실은 다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