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여행을 떠나는 아버지를 배웅하면서도 전혀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울어야 한다'며 남자다움을 강변하는 한국문화에서조차 눈물을 허용하는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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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누군가의 경험과 지식을 잘 정리된 상태로 받아들이는 간접 경험이라면 여행은 내가 몸소 겪는 산 체험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여행이 그랬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영원한 여행을 떠나는 아버지를 배웅하면서도 전혀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울어야 한다'며 남자다움을 강변하는 한국문화에서조차 눈물을 허용하는 때가 아닌가? 나는 슬픈 감정 없이 덤덤한 내 자신을 보며 적이 놀라웠다.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으려 애쓰면 상황은 더욱 악화되는 법. 나는 끝내 눈물이 말라 버려 퀭한 눈으로 아버지를 배웅해야 했다.
인생의 마지막 여행은 시공을 초월한다. 지나간 시간과 현재와 미래가 만나고, 멀리 떨어져 있는 공간과 가까이 있는 공간이 서로 마주하게 된다. 고인과 그 식솔들과 그들의 지인들이 멀리서 또 가까이서 함께 모여 지난 시간을 반추하고 앞으로의 날들을 얘기한다. 그리고 그런 기회를 제공해 준 당자는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는 세계로 떠나 '영원한 노마드'가 된다.
"가신 분은 가셨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은 남은 사람들을 위한 매우 이기적인 표현인 것 같다. 나도 그랬다. 캐나다에서 언제나 허기로 느껴졌던 활어회와 바닷물로 만든 두부, 복어지리와 장어구이, 덕수궁 돌담 길 뒤편에 이름난 추어탕을 먹고도 맛에 대한 공허감을 채우지 못했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 여전히 궁금하고 답답하지만, 내가 그리워 했던 그 맛은 이제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 짓기로 했다.
이민자인지 여행자인지 혼동 속에서 살아온 지난 세월은 내 기억 속의 맛을 나의 감정과 바람으로 버무려 이 세상에 없는 새로운 맛을 숙성해 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여행자의 마음으로 살 수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