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가지 분수(4)
최성희
다음 날 아침 체크아웃을 하고 바르셀로나 행 기차표를 끊기 위해 TGV 역에 왔다. 그런데 미리 예약을 안 한 탓에 2등석은 이미 매진이어서 눈물을 머금고 고가의 1등석을 끊어야 했다. 게다가 원래 직행 열차가 없어 황당하게도 마르세유(marseille)로 이동한 다음 10분 후에 출발하는 몽펠리에(Montpellier) 행 열차로 갈아탄 후, 역에서 내려 다시 20분 후에 출발하는 바르셀로나 행 열차를 타야 하는 정신없는 여정이었다.
사실 처음엔 니스(Nice)에 머물며 무척 소박하고 프랑스적이라는 생폴 드방스(Saint-Paul-de-Vence)를 들를까 하다가, 휴양도시인 니스가 그닥 땡기질 않아 결국 '프로방스'라는 단어를 좇아 이 물의 도시로 바꾼 건데 이제서야 원래대로 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솔직히 이 작은 도시는 화가 폴 세잔(Paul Cézanne)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겐 그의 자취와 작품 세계를 맛볼 수 있는 최적의 여행지이지만 번잡스런 파리에 비해 조금 더 고풍스럽고 차분하다뿐, 적어도 내게는 기대했던 만큼의 프랑스적인 뭔가를 느끼기엔 2% 아쉬웠다.
이틀 전에 방문했던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는 듣던대로 특유의 독일스런 분위기가 아주 좋았는데 말이다. 한국에서 여행 계획을 짜며 검색하다가 이런 우스갯 댓글을 본 적 있다. '프로방스' 중 최고는 '파주 프로방스'라고... 어쨌든 실수와 후회는 언제나 빠질 수 없는 여행의 필수 조건이다.
그런데 표를 끊기 위해 카운터에서 신상 정보를 입력하는데 프랑스 인 직원이 갑자가 프랑스 억양으로 "유어 벨츠데?" 하고 묻는다. 벨츠데???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니 그가 갑자가 "mine is... 1975..." 한다. 아하... birth day... 친절하게도 이 신사분은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기꺼이 자기 생일까지 예로 들며 알려주신다. 그래봤자 선물은 못 챙길 텐데...
기차 탑승까지 한 시간 이상이나 남아 역 로비에 앉아 지루함을 달래고 있는데, 옆에 앉아 있던 영어가 꽤 유창한 편인 한 중년의 프랑스 여성이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길래 South Korea라고 했더니 오~ 하고 놀란다. 혼자 40일 간 유럽 여행 중이며 다음 여정은 바르셀로나라고 했더니 스페인은 영어가 잘 안 통할 거라며 단단히 각오하란다. 그래서 뭐, 프랑스도 만만찮더라고 했더니 웃으며 맞다고 한다. 자신은 이렇게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좋아서 일부러 영어를 열심히 배웠다며 즐거운 여행 되기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어쨌든 그렇게 난 절반의 추억과 절반의 아쉬움을 남긴 채 프랑스를 떠나 스페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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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를 향한 갈증, 액상 프로방스가 더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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