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D수첩'의 김현기, 조윤미 PD
MBC 노조 제공
"한상균 아이템, 싸우려는 게 아니라 노동 문제 다루려고 했다"- 제작중단을 들어간 게 이영백 PD와 조 PD님이 발제하신 '한상균을 향한 두 개의 시선'이라는 아이템이잖아요. 현 시점에서 이 아이템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조 :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일자리 문제, 최저임금, 사람들이 먹고사는 노동현장에서의 권리가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고, 많은 분이 먹고살 만하게 해달라는 요구가 있잖아요. '한국노동권리지수 세계 최하위'란 기사를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봤어요. 1에서 5등급까지 보면 나눠놓은 게 웃겨요. 1등급인 노동자의 권리 지수가 높은 나라는 '권리 침해가 불규칙'하고 2등급은 '권리침해가 반복적'이긴 하다는 거죠. 3등급은 권리침해가 좀 더 자주 나온다는 얘기고 4등급은 '권리침해가 체계적'이란 거예요. 근데 우리나라는 5등급이거든요. 뭐냐면 '노동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라는 거예요. 이걸 언젠가 방송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어요. 근데 이언주 의원의 막말 파문이나 문재인 정부에 대한 사람들의 요구 등이 결합되면서 노동자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우리나라는 최하위가 될 때까지 나빠지기만 하고 왜 좋아지지를 않았나' 하고 봤더니 집회시위에 대한 자유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한상균에 대해 그 당시 나왔던 게 유엔 산하 기구에서는 석방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거예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 판결이 곧이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일자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이것을 한상균 판결과 함께 되짚어보고 싶은 큰 야망을 품고 시작했어요. 사실 저희가 제대로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는 일이지만, 다뤄는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시사프로그램이니까요."
-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구명 문제를 PD수첩 소속의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다룬다면 이해 상충에 따라 제척 사유에 해당한다"는 사측의 주장은 어떻게 보세요?조 : "노동조합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로 저희를 칭했습니다. 하지만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라면 제가 한상균 위원장과 친인척 관계라든가, 아니면 한 위원장 석방이 저에게 직접 이해관계가 달려 있다면 직접적인 당사자라 볼 수 있죠. 그런 면에서 보호장치는 필요하겠죠.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가 방송 프로그램을 하는 건 문제가 있죠. 그러나 저희가 가입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직접 이해당사자로 보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봅니다."
- 김장겸 체제에서 한상균 위원장 아이템 불허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발제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정말 하려고 한 것인가요. 아니면 이를 빌미로 싸워보려는 의도였나요?김 : "최순실 사태 이후에는 저희가 그동안 못했던 아이템이 상당 부분 통과도 됐어요. 중간에서 장형원 팀장 역할도 있었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것에 저희 회사 임원들도 민감해서 마냥 예전처럼 틀어쥘 수만은 없는 분위기가 있죠. 그동안 못했던 세월호 아이템이나 4대강 아이템 등도 방송했어요. 그래서 이런 아이템도 해나갈 수 있겠다고 PD들 사이에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었죠.
근데 4대강 아이템 이후 임원진에서 말이 많았고 사측의 인내심이 딱 거기까지였다는 걸 전임 팀장 통해 들었어요, 그 후 한상균 아이템을 내니 '킬' 당한 거죠. 저희는 그게 한상균이라서 거부당한 면도 있지만, 그 이전부터 더는 밀리면 안 된다는 사측 분위기도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조 : "이 질문의 내용은 싸우려고 낸 아이템 같다는 것 같아요. 만약 저희가 싸우려고 했으면 좀 더 영리하게, 한상균이 아닌 다른 아이템을 내고 조금 더 모든 사람이 공감할 내용으로 싸웠을 겁니다. 왜냐면 한상균이라는 사람이나 민주노총을 싫어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 면에서 이건 싸우려는 아이템이 아니라 방송하려고 낸 아이템입니다."
"세월호 2주기, 죄송해서 세월호 가족 앞을 지나갈 수가 없었다"- '왜 가만히 있다가 정권 바뀌니 지금 나서냐'는 시선도 있어요.조 : "그런 의견 저희도 알아요. 그런데 저희 'PD수첩' 구성원들 보면, 이영백 선배는 2012년 파업 이후 노동 인권 관련 아이템 방송하다가 지시 불이행으로 3개월 징계 받았어요. 그리고 다시 'PD수첩'에 와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원외교를 비판하는 아이템을 했다가 2년 반 동안 스케이트장 관리 등을 전전했어요. 서정문 PD도 멀쩡히 제작 잘하고 있다가 DMB 실로 쫓겨나 있다가 다시 돌아왔고. 황순규 PD도 파업 때 미운털이 박혀서 사업 부서에서 4년을 근무하다 돌아왔습니다. 내부에서 조금만 뭐라고 하면 내보내요. 그리고 다른 PD를 집어넣어요. 그런데 이 PD들이 열심히 해왔어요.
저는 'PD수첩'을 오래 했어요. 저는 성격이 잘 대들지를 못해요(웃음). 이런 그룹이 몇 명 있어요. 저희가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라 현장에서 열심히 싸웠어요. 그래서 제작 중단이라는 극한의 결정을 하기까지 내부적 논의와 고민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 백남기 농민이 쓰러졌을 때 이 아이템 하려고 제출했습니다. 그러자 당시 팀장이 국장 만나고 오더니 한숨을 쉬며 '<100분토론>이 할 테니 우리까지 하지는 말자'고 했어요. '<100분 토론>은 토론이고 우리는 현장 그림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그렇기 때문에 <100분토론>에서 하더라도 우리 프로그램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팀장님이 다시 국장실로 가지 않았어요. '우리가 자꾸 이렇게 아이템 가지고 부딪히면 지금은 우리 기존 인력풀 내에서 발령내지만, 그러다 이상한 친구들 뽑아서 대체하면 어쩔래. 기자들 봐라. 지금 MBC 뉴스가 '흉기' 되지 않았냐. 우리도 그렇게 되면 조직이 무너지는데 방송 하나가 중요하냐?'라는 팀장의 진심어린 우려가 저희에게는 굉장히 큰 짐이었습니다.
그래서 매번 아이템이 비합리적인 이유로 제지당하고 난도질당하는 걸 보면서도, 어디까지 싸우고 어디까지 물러설지에 대한 수위 조절이 어려웠어요. 바깥에서는 'PD수첩 요새 누가 보냐', '아직도 방송하냐'란 소리 듣고 'MBC와는 인터뷰 안 한다'는 소리 듣는데 그걸 누가 알겠어요. 회사 내부에서조차 제작 중단이라고 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고통을 모르더라고요."
- 외로웠겠어요.조 : "답답하죠. 누가 이 심정을 알까요. 차라리 피 터지게 싸우고 문제를 제기하면 좋겠는데. 또 한편으로는 무서운 거예요. '이렇게 쫓겨나면 정말 'PD수첩'을 이상한 사람들로 채워서 원상복구가 불가능한 조직으로 만들면 어떻게 할까'라는 두려움이 지금 저희 팀 PD들에게는 있습니다. 그래서 수위 조절을 해야 했어요. 그렇다고 매일 시키는 대로 하고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할 말은 하려고 노력했어요. 아예 못하게 한 건 아니었거든요. 계속 줄다리기예요. 그래서 수위 조절이 너무 힘들었어요.
- 그럼 목표가 '일단 살아만 있자'는 것이었나요?김 : " 솔로몬 판결을 보면 친엄마와 가짜 엄마가 나오는데 친엄마는 아이를 사랑해서 아이를 반으로 가를 수 없잖아요. 그런 느낌이죠. 'PD수첩'은 저희 선배들로부터 시작해서 20년 넘게 해온 프로그램이고 저희는 그 DNA를 물려받은 후배들입니다. 조창호 국장이건 누구건 'PD수첩' 관리자로 왔지만, 저희만큼 'PD수첩'에 대한 애정도 별로 없고 이 프로그램이 왜 이런 아이템을 다루면서 지금의 'PD수첩'이 되어 왔는지 이해도가 거의 없는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이 프로그램을 지킬 사람은 이걸 만들어온 우리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그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면 어떻게 되냐면, '이게 언제든지 우리가 빌미를 주면 프로그램을 날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PD수첩이 날라가도 나중에 좋은 세상 오면 복원하면 되지'라고 생각하지만, 그 자체가 PD 자신들 혹은 지금도 'PD수첩'을 여전히 믿고 기다려주는 시청자들에게 줄 충격이 너무 클 게 뻔하잖아요. 그래서 '지금 여기 남아 있는 사람들이라도 이 프로그램이 더 망가지지 않게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데에 집중한 거죠. 프로그램이 더 나아지게 만드는 것도 참 어려운데, 그것만큼이나 덜 망가지게 만드는 것도 어렵더라고요. 두 가지 싸움을 동시에 한다는 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 MBC 특히 <PD수첩>에서 아이템 불허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잖아요. 2012년 170일 파업 중 제작한 '피떡수첩'을 보면 아이템 통제에 대한 내용이 나와요, 그로부터 5년이 지났잖아요. 그동안 아이템 통제가 더 심해져서 자기검열이 심했을 것 같은데.조 : "아무래도 영향을 받습니다. 왜냐면 저희가 제작을 해야 할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아이템 통과 여부를 놓고 씨름하는 기간이 며칠 계속 지나가면 마음이 조급해지죠. 시청자들에게 어떤 주제가 되었든 퀄리티 있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데 싸우느라 그럴 시간이 없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때로는 예민한 아이템을 스스로 '아 이거 어차피 안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포기했던 적이 있습니다."
김 : "저도 있어요. 조윤미 PD가 세월호 2주기 때인가 세월호 아이템 한번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얘기한 적 있어요. 그 때 제가 '그거 정말 해야 하는데 통과가 되겠냐?'고 했어요. 그러고 회사 건물을 나가는데 당시 유가족 분들이 회사 앞에서 세월호 보도를 해달라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계셨어요. 그 분 앞을 똑바로 못 지나가겠더라고요, 너무 죄송해서..."
- <미디어오늘> 보도에 의하면 조 PD님이 "'PD수첩'에 내 얼굴 나오는 것조차 싫었다"고 하셨던데.조 : "저희는 원래 PD가 직접 출연해서 방송했던 프로그램입니다. 저희가 나와 프로그램을 하면서 느끼는 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게 'PD수첩' 콘셉트이죠. PD의 얼굴을 걸고 전하는 것이거든요. 그러나 PD가 나오는 부분이 시청률 부분에서는 좋지 않아요(웃음). 시청률 제고 때문에 PD 나오는 것 때문에 회의했는데 아이템이 계속 통제당하고 하고 싶은 얘기를 시원하게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까 이게 제가 만든 프로그램 같지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들고요. 심지어는 창피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죠. 그때 PD가 출연하지 말자는 의견이 나오니까 PD들이 전부 다 찬성하더라고요. 없어진 게 한 3년 됐나요? 그런 것 같아요.
세월호 2주기 때 다른 프로그램들은 다 세월호 특집을 제작했어요. 특히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인양이 왜 늦어지는지 심층적으로 잘 만들었더라고요. 근데 저는 그때 '아이돌 연습생의 눈물'이란 방송을 했습니다. 얼굴이 나오고 싶겠냐고요. 물론 그 아이템이 못할 아이템은 아니에요. 나름대로 아이돌 연습생들이 기획사에 착취당하고 젊은 시절을 저당 잡히는 얘기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라고 봐요. 하지만 '꼭 그걸 세월호 주간에 방송했어야 했냐'는 생각에 자괴감을 느끼는 거죠."
- 사측은 MBC 시사제작국 명의로 발표된 입장문을 통해 "'PD수첩'이 민주노총의 '청부' 제작소인가", "'PD수첩'을 '청부' 제작소로 만들려는 억지 '몽니'를 중단하라"고 주장했고 이에 대해 <PD수첩> 제작진은 사측을 허위 사실에 따른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잖아요. 처음 입장문 봤을 때 어떠셨어요?조 : "입장문을 회사에 다 뿌렸더라고요. 아침에 제작중단 피케팅을 하고 올라가니 책상에 그게 놓여 있는데 기가 막혀서 웃음만 나왔어요. 어떻게 같은 PD들을 향해 '청부 제작소'란 단어를 쓸 수 있는지... '청부'는 살인같은 안 좋은 행위에나 쓰는 말 아닌가요? 너무 기가 막히죠."
"'MBC 없어져라' 같은 냉소적 반응 볼 때 제일 가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