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한국독립PD협회는, 고 박환성·김광일 PD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며 이들의 귀환을 돕고 있다.
한국독립PD협회
현지시각으로 지난 7월 14일 오후 8시 45분경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EBS <다큐 프라임-야수와 방주>를 촬영하던 박환성, 김광일 PD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독립PD협회는 유가족들과 남아공으로 가서 시신을 수습하고 사고 경위를 파악해 돌아왔다.
사고 경위 등 사고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복진오 한국독립PD협회 PD를 지난 1일 서울 환경운동연합에 있는 카페서 만났다. 복 PD는 박환성 PD와 친구로 남아공에 가서 시신을 수습해 돌아온 사람이다. 다음은 복 PD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 지난달 29일 박환성, 김광일 PD의 영결식이 있었잖아요. 박환성 PD의 친구이신데 친구를 떠나보내야 해서 가슴이 아프셨을 것 같은데."환성이는 독립 PD 중 친한 사람이 많았고 저도 많이 친했거든요. 환성이가 저보다 한 살 어리다는 걸 환성이가 가고 나서야 알았어요. 반말해서 친구로 알았는데 다음에 만나면 뭐라고 해야죠(웃음).
예전에 환성이와 인도에 가서 환성이 프로그램을 같이 촬영한 적도 있고 제가 협회 운영진 일을 할 때마다 저에게 격려와 지지를 보내줬어요. 저도 그 부분이 고마워서 환성이와 각별하게 지냈죠. 그래서 그런지 처음 환성이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환성이가 겪었던 일이 생각나 억울하고 분해서 많이 울었어요. 하지만 아직도 환성이 죽음이 실감 나지 않아요. 멀리 출장 간 것 같고 (어디에) 있는 것 같아요."
- 사고 소식은 어떻게 들으셨어요?"지난달 18일 제주도 출장을 갔다가 김포공항에 내렸는데 지인에게 환성이가 사고 났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사고라 해서 '국내에서 처리했던 일이 문제가 있나' 생각했지, 죽음이라곤 생각도 안 했죠, 교통사고라고 했을 때도 '다쳤거나 무슨 일이 있나'로 받아들였죠.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죽었다고 전했을 때 죽음을 알게 된 거죠."
- 유가족과 함께 시신 수습과 사고 파악을 위해 남아공에 가셨잖아요. 가셔서 사고 차량에 있던 햄버거와 콜라를 보셨는데... 어떠셨어요?"송규학 회장님과 협회 대외협력부장인 권용찬 PD, 그리고 저는 환성이와 친분 있어서 현장기록 겸 유품수습 담당해서 갔어요. 사고 차량을 보관하는 장소에서 차량 형태를 확인했죠. 거기 고장 난 핸드폰이라든지 신발이나 시계 등이 남아 있더라고요.
가족과 그걸 수습하면서 콜라나 햄버거 비슷한 게 있더라고요. 콜라는 평상시 환성이가 오지나 밀림 가면 갈증도 나고 (날씨가) 더우면 자주 먹었어요. 함께 인도에 가서 촬영한 경험이 있어서 그걸 보는 순간... 제가 기록 담당인데 촬영하고 싶지 않았어요. 왜냐면 그 모습을 보면 많은 사람이 힘들고 괴로워 할 것 같아서죠. 하지만 있는 그대로 환성이가 마지막 간 길을 기록하는 것도 친구로서 해야 할 일이니 촬영하기는 했죠."
- 사고 경위는 어디까지 파악하셨어요?"촬영이 끝나고 이동하며 도착할 숙소에 전화도 했대요. 모든 장비를 차에 실었더라고요. 도로는 2차선 국도인데 제한 속도가 빨라요. 웬만한 건 120km 나오더라고요. 가로등도 없어요. 마주 오던 차와 정면충돌했는데 사고 차 뒤에는 남아공 여간호사분 차가 따라왔는데 나중에 조서를 보니까 앞차가 졸음운전 하는 것 같았다고 진술했어요."
- 블랙박스 같은 건 없었나요?"네. 확인 못 했어요. 거기는 토요일 일요일 모두 쉬더라고요. 저희도 월요일에 맞춰 갔어요. 시신이 수습된 안치소에 갔을 때 경찰이 협조를 잘했어요. 한국 대사관이나 영사분들도 나와서 사전에 조치해 주셔서 저희가 수습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고 절차도 빠르게 진행됐어요."
- 경찰 발표는 어떻게 난 건가요?"말 그대로 차량 두 대가 사고 났고 사고 원인은 정면 충돌이죠. 상대방 운전자도 사망했어요. 브레이크를 밟으면 자국이 남는 데 그런 자국도 없었어요. 그 현장에 직접 갔는데 그냥 부딪힌 거고. 남아공은 길이 평지이면서도 곡선이에요. 또 사고 난 지역이 곡선이 있으면서도 살짝 나지막한 경사지가 있어서 밤에 운전하기에는 위험한 것 같기는 하더라고요. 앞 차량이 졸음운전을 한 것 같아요."
"시신운구 경비가 없어서 모금 받아 남아공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