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마네가 거닐었다던 파리 근교의 어느 강가에서 백여사님과 함께 여유있는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이성애
여행을 다녀와 마당이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아이들은 공부, 경쟁 스트레스가 비교적 적은 시골 학교에 입학하여 아무런 편견 없이 친구를 사귀고, 학교생활을 했다. 아이의 머리에서 머릿니가 발견되고 며칠 있다 학교에서 머릿니를 박멸하자는 안내장을 받았다. 머릿니 박멸을 위해 약품을 쓸까 어쩔까 고민하며 문득 십년은 족히 거슬러서 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편안했다.
마당에는 여러 마리의 개와 어느 추운 겨울 우리 집에 눌러 앉은 도둑고양이가 숨바꼭질을 하며 앙앙대며 뛰노는 날의 연속이다. 아이들은 짐승처럼 손을 발처럼 땅을 딛고 움직이는 용도로 썼다. 감, 살구, 보리수를 따 먹었고 목련, 복숭아꽃이 피고 지는 걸 보았다. 라일락 꽃내음이 참 고급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뽕나무 열매인 오디를 따 먹다 목이 꺾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주택의 삶은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피하지 않고 최대한 정직하게 계절을 받아들이게 해주었다.
마당 있는 집에서 동물과 함께 유년을 보내는 것이 다른 나라에선 일반적이지만 우리나라에선 소수만이 실행에 옮길 수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나와 우리 가족을 바라보는 관심과 시선이 때론 부담스럽기도, 불편하기도 했다. 아이들의 사회성이 걱정 되어 시골 생활을 부정적으로 봤던 한 다리 건너 지인, 한창 여아 성폭행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당시 마치 시골생활이 곧 우리 아이도 성폭력을 당한 것인냥 폭풍 걱정을 쏟아 붓던 나의 가족 중 1인. 그러나 휩쓸리지 않고 크고 작은 스트레스, 극도의 두려움에 맞서 지금까지 만족할 만한 결정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 스며들어간 유럽캠핑에서의 배움과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 나이 서른아홉, 맞벌이 워킹맘으로서 나는 여전히 일상을 살고 있다.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그래서 지루하고 대부분 고단한 나의 인생을 살아간다. 앞으로 인생의 많은 갈림길 앞에서 난 크고 작은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주위 친구와 동료의 염려와 걱정이 때론 위안과 응원이 되기도 할 테고, 때론 나를 더욱 두렵게 만들어 한 걸음 내딛기조차 무서운 그 어떤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때마다 꽤 오래 전 여행이었으나 지금까지 나를 이루는 일부분이 되어 버린 그것에 의지해 보기로 한다.
"한국 사회 구성원의 95%가 선택했다고 다 옳은 것은 아닐 수 있어. 내가 그리 유별난 사람은 아닐 수도 있어. 소수 5%의 삶일지라도 이것이 글로벌 스탠다드 일 수도 있어. 그러니 나도, 너도 그냥 우리가 옳다고,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대로 삶을 살아가도 그리 나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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