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7일 신촌 인디톡. 선배 조한새임의 도움으로 '송인상 단독 콘서트' 포스터를 만들기도 했다.
송성영
홍대 길거리에서 기타를 메고 주변 상가 사람들이나 경찰들에게 이리저리 쫓겨 다니며 노래하던 녀석으로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무대에 초대가수로 오른 것이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 후로 몇 곡의 노래를 더 만들어 형의 도움으로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작은 음반을 냈고 그 여세를 몰아 단독 콘서트를 마련했던 것이다.
녀석이 노래를 시작한 것은 산골 생활을 하다가 호남고속철도에 보금자리를 내주고 외진 바닷가에서 생활했던 중학교 때부터였다. 집 두 채가 전부였던 그곳은, 전화선은 물론이고 인터넷이 들어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농사일을 거들거나 빈둥빈둥 놀다가 따분하면 기타를 잡았다. 어렸을 때부터 형과 함께 학교 공부를 하면서 학원 한 번, 학습지 한 번 받아 보지 않았듯이 기타며 작곡 등 노래를 독학으로 배웠다.
녀석의 노래에는 지 형 송인효와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의 기억들이 낱낱이 새겨져 있다. 두 형제가 함께 부르는 '내가 살던 산동네'에도 나오듯이 아궁이 굴뚝 연기가 있고 고라니 발자국이 있고 가재와 버들치가 있다. 또한 사라진 옛 고향집 앞에 아름드리로 서 있던 둥구나무가 있고 장승이 있다. 그리고 방황하던 청소년기에 자신을 품어 줬던 엄마의 품속 같은 바다가 있다.
녀석은 말수가 적은 편이지만 노래에는 산골과 바다와 함께 어린 시절의 감성이 녹아있다. 살아온 환경이 그러했듯이 녀석의 노래에는 그 만한 나이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남다른 정서가 있다. 언젠가 <오마이뉴스>에
'호남고속철도 개발, 아들은 펑펑 울었다'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듯이 녀석은 망가져버린 고향 마을을 노래로 옮긴 '장승아저씨'를 부르면서 펑펑 울기도 했다. 빈틈없이 화려한 서울에서 힘들게 알바를 해가며 옥탑방 생활을 하고 있지만 녀석은 여전히 촌놈이다.
녀석이 앨범을 낼 때 변변치 않은 글로 먹고 사는 가난한 아버지인 나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은 노래 소개 글이었다. 거기에 이렇게 적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인상'이는 여전히 촌놈이다. 그의 노래 '서울의 밤'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그는 산과 들, 바닷가에서 피어나는 야생화 한 송이를 들고 서 있는 촌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거기 흙 한줌 움켜쥐기 힘든 서울, 밤샘 알바를 마치고 옥탑방으로 돌아와 노래하는 '인상'의 노래에는 잊혀져가는 대자연의 숨결, 귀하고도 소중한 촌놈의 감성이 묻어있다."송인상의 앨범 타이틀은 '물감'이다. 거기에 인상이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았던 추억부터 서울에서 자취하고 있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을 노래로 만들었다. 만든 노래마다 각각 다른 색깔이 떠올랐다. 살아온 환경이 바뀌면서 나의 모습이나 감정들이 뻑뻑한 물감처럼 다른 색깔에 덧칠되기도 하고, 촉촉한 물감처럼 번져 나가는 느낌이 드는 순간순간들을 다시 기억할 수 있도록 노래로 붙잡아 놓고 싶었다. 완성되지 않을 그림을 계속해서 그리며 살고 싶다."내가 사는 산막으로 들어서면서 마을을 벗어나 계곡물이 흐르는 작은 다리를 건너야 한다. 그리고는 삼삼하게 펼쳐진 솔 숲 길을 만나게 된다. 녀석들은 어려서 할아버지 품 같은 커다란 둥구나무 길을 걸었고 머리가 여물어서는 아침 해가 떠오르는 푸르고 붉은 바닷길을 걸었다. 올곧게 바른 세상을 꿈꾸는 청춘, 지금은 사시사철 푸르른 조선 소나무 길을 걷고 있다.
싱어송라이터의 길을 걷고 있는 두 녀석들에게 이 길들은 단지 자신들만의 길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할 또 다른 '노래'이기도 하다. 녀석들과 함께 이 길을 걷다보면 가진 게 별로 없는 애비인 내가 물려줄 수 있는 재산은 녀석들이 걸어왔고 걸어가고 있는 이 삼삼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