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야도'에서 보낸 날들, 잊지 못할 '휴가다운 휴가'

[여름휴가 후기] 진정 함께하고픈 이들과 편안하게 아무 생각 없이 쉴 수 있는 곳에서 보냈다

등록 2017.08.21 17:26수정 2017.08.21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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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까지 나에게 여름 휴가는 똑같았다. 추석에 차례를 지내러 찾아뵙기 전에 묘지 관리 및 벌초도 할 겸 강원도로 간다. 아버지 형제분들 가족과 함께, 음력으로 추석인 8월 15일을 전후한 1박 2일 내지 2박 3일의 짧은 기간으로 말이다. 벌초하고 근처에 유명한 막국수를 먹고는 동쪽으로 동쪽으로 주문진에 가서 회를 먹는다. 끝.

어릴 때는 너무 좋아 일 년을 기다리곤 했다. 또래 친척들을 만나는 것도 재밌고, 북적거리며 먼 곳으로 함께 차를 타고 가는 것도 재밌었다. 더군다나 그때는 방학을 이용해 4박 5일씩 있으면서 물놀이도 하고 산도 타고 여러 곳을 두루두루 다니는 등 제대로 된 휴가를 보냈었다.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는 좋은 추억들이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때 그 어린아이들이 이제는 다 어른이 되어 서먹서먹해진 건 둘째 치고 예전처럼 마음 놓고 재밌게 놀 수 없게 되었다. 각자의 스케줄 때문에 완전체로 모이지 못하는 부분도 한몫하겠다. 한 번 참여하지 못하게 되면 다음에도 왠지 참여하지 못하게 되는 게 모임 아니겠는가.

나는 군대를 다녀와서도 참여했는데 더 나이 먹고부터는 함께 하지 못했다. 여러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이후엔 휴가다운 휴가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결혼하기 전, 지금의 아내인 여자친구와도 제대로 된 휴가를 함께 보내지 못했다. 그 역시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인데, 결혼 이후에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좋은 시간들을 보냈고 또한 보내고 있으니 전화위복이라고 생각하련다.

설렘과 기대, 걱정과 부담의 여름휴가

 소야도로 2017년 여름휴가를 떠나는 길.
소야도로 2017년 여름휴가를 떠나는 길. 이유정

결혼을 하고 나선 여름 휴가를 처가댁과 함께하게 되었다. 치밀하고 꼼꼼하신 장인 어른(아래 '아버님')의 주도로 모든 걸 다 챙겨주시는 헌신적인 장모님(아래 '어머님')께서 아내와 나를 케어해 주신다. 작년에는 스케줄이 맞지 않아 당일 코스로 새만금간척지 근처에 다녀왔었다. 끝없이 펼쳐진 방조제를 달리며 정신의 피로를 풀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대망의 2017년 올해는 휴가가 오기 한참 전에 스케줄을 맞추고 어디로 가서 어떤 곳에 짐을 풀고 어떤 일로 하루하루를 보낼지 미리 대략이라도 생각을 해두었다. 물론 장인 어른의 주도 하에 말이다. 나에게 있어, 머리가 다 크고 나서 이런 제대로 된 휴가는 아마도 처음일 듯. 설렘과 기대가 한껏 부풀었었다.


반면 아버님·어머님과의 휴가도 당연히 처음이니, 걱정과 부담도 한껏 부풀 수밖에 없었다. 비록 그래도 자주 만나는 편이라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아버님과 어머님이 아니라 그렇게 큰 걱정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내와 나만의, 또는 나만의 휴가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다른 불만 또한 없었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니, 설렘과 기대가 7이라면 걱정과 부담, 그리고 다른 불만이 3 정도였을 게다. 한편, 아내는 너무너무 좋아했다. 마음이 편한 것 같았다. 우리끼리 휴가를 가게 된다면 우리가 아닌 아내만 챙겨야할 게 너무 많은데, 처가댁과 함께 가니까 생각해야 할 것도 챙겨야 할 것도 터무니없이 줄어드는 게 아닌가. 그녀는 진정한 휴가를 보내게 될 거라고, 무진장 편하고 재미있을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아내의 말을 믿어 보기로!


'소야도', 그곳은 완벽한 휴가처

 완벽한 휴가처 '소야도'
완벽한 휴가처 '소야도' 이유정

우리가 갈 곳은 인천 바다에 떠 있는 '소야도'로 정해졌다. 대부도에서 배 타고 2시간 안팎의 거리에 있는 조그마한 섬. 이른 아침 적당한 시간에 출발해, 적당한 기다림으로 기대와 설렘을 극대화하고, 그를 실현해줄 배도 타고는 소야도로 향했다. 너무나도 맑은 날씨와 어울리는 천연의 자연환경이 우리를 반겼다.

아내와 난 챙겨야 할 게 너무 없었다. 그저 우리 둘의 옷가지와 몇몇 놀이품들만 챙기면 되었다. 반면, 아버님께서는 모든 경비는 물론 휴가 장소·숙박 장소·매일매일의 스케줄·차 운전까지 도맡아주셨다. 어머님께서는 매일매일 삼시 세끼를 완벽하게 책임져 주셨다. 집에서도 잘 챙겨 먹지 않는 삼시 세끼를 그곳에선 4일 동안 꼬박꼬박 챙겨 먹었고 모르긴 몰라도 살이 많이 찌지 않았을까 싶다.

막상 가본 소야도, 그리고 우리가 묵게 된(묵을 수밖에 없는) 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주 작은 섬인 소야도에는 무수한 자연환경이 있을 뿐 카페나 슈퍼마켓, 식당 같은 이른바 문명인의 필수처가 없었다. 처음엔 '당황&황당', 그리곤 '적응'을 거쳐, 지금에는 사무칠 정도로 그리워지는 '만족'이 이어졌다. 그렇다. 그곳은 완벽한 휴가처였다.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한때를 선물하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우린 매일 똑같은 스케줄을 함께 가졌다.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을 먹고는 다시 잠들거나 놀면서 오전 내내 방을 떠나지 않는다. 이윽고 점심까지 챙겨 먹고는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해변(해수욕장)으로 향한다. 몇 시간 동안 물놀이를 하고는 물이 슬슬 빠지는 때부턴 본격적 조개잡이에 진입한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조개를 잡고 복귀해 자다가 저녁을 먹고 고스톱을 친다. 적당히 치다가 일찍 잠을 청한다. 아니, 하루 종일 너무 놀았기에 일찍 잠들 수밖에 없다.

정녕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놀았던 해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놀았던 해변. 이유정

개인적으로 난 원래 낮잠도 잘 안 자고 일찍 잠자리에 들지도 않으며 하루 종일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무언가를 해야 하는 사람이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불안'을 난 그런 식으로 해소하려 하는 것일 테다. 한시라도 생각하지 않고 무언가라도 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그런 기분의 연속. 당연히 이번 휴가 때도 노트북과 책과 핸드폰을 가져가 무엇이라도 하고자 했다.

과정과 결과는 내 예상과 정반대. 난 그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일상 생활을 영위할 때 하곤 했던 또는 해야만 했던 것들 말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스스로의 불안 때문에 해야 했던 것들과 누군가의 부탁 또는 명령에 의해 반드시 해야만 했던 것들.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가를 가서도 휴가 이전에 미처 하지 못했던 것들과 휴가 이후에 밀려들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나를 아주 잘 아는 아내가 그랬다. 어쩐 일로 이렇게 낮잠을 자느냐고. 왜 아무 일도 하지 않느냐고. 표정이 참 편해 보인다고. 아버님과 어머님은 그곳이 너무너무 좋다고 하셨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게 해주는 진정한 평화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 같다고. 그저 먹고 마시고 놀고 자고. 가만히 있어도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돈을 쓰러 휴가를 간다. 그래서 휴가 갈 만한 곳에는 역설적으로 문명의 이기들이 그 어느 곳보다 많이 들어차 있다. 많이 생각할 것도 없이 제주도만 보아도 단번에 알 수 있지 않은가. 반면 이곳 소야도는, 오로지 펜션들만 눈에 간간이 띌 뿐이었다. 그 주인들조차도 생필품은 옆의 큰 섬 덕적도나 멀리 인천에서 가져온다고 했다. 이런 곳이 어디 있을까 싶다. 정말 다시 없을 휴가를 만든 장본인이다.

내년이 기다려진다, 진정 '휴가다운 휴가'

 다시 오고 싶은 그곳, 진정한 휴가가 무엇인지 알려준 그곳.
다시 오고 싶은 그곳, 진정한 휴가가 무엇인지 알려준 그곳. 이유정

내년 여름 휴가가 벌써 기다려진다. 다들 이곳을 더할 나위 없이 마음에 들어 해서, 다음에도 이곳 소야도가 아니더라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 곳으로 여름 휴가를 떠날 것 같다. 그때는 노트북 따윈 들고 오지 않을 것 같다. 일상에서, 회사에서 했던 수많은 생각들도 들고 오지 않을 것이다.

휴가가 아니더라도 아버님, 어머님, 아내와 함께 떠나는 그 어떤 여행이라도 기다려진다. 어딜 가서 무엇을 하든 함께 하는 사람만큼 중요한 게 없는데, 한 가족이라는 걸 떠나서라도 그들은 나에게 가장 재밌고 가장 편하고 가장 좋은 사람들이다. 한 가족인 게 너무나 좋다. 언제든 함께할 수 있으니.

진정 휴가다운 휴가. 일을 위한 재충전도 중요하지만 그따위 건 잠시 접어두고, 진정 함께하고픈 이들과 편안하게 아무 생각 없이 쉴 수 있는 곳에서 보내는 것. 난 이번 기회로 일을 하는 와중에 휴가를 다녀오는 게 아니라, 휴가를 위해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고자 한다.

혹시 기존의 나처럼 불쌍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아무것도 없는 곳에 가서 아무 생각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그래도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함께 하는 사람들이다. 따로 또 같이 즐길 수 있는 이들과 함께 내려놓는 시간을 가지고 와라. 그리고 그런 시간을 더 많이 가질 기회를 만들려고 노력하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여름휴가 #소야도 #처가댁 #만족 #완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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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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