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가 군 병원에서 얻은 판독 결과. 'back pain'이란 글귀가 보인다.
이정민 제공
일말의 희소식이 이씨에게 전해졌다. 4월 6일, 국군수도병원이 이씨에게 신체등급 4급 판정을 내린 것이다. 이씨는 군 생활을 이어나가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통증이 계속되자 수도병원에 판정을 의뢰해 4급을 받은 것이었다.
현역 입영 기준에서 4급은 '보충역', 즉 사회복무요원이다. 그러나 이씨는 판정 결과를 들고 대대 주임원사를 찾아가자 "4급 받았다고 다 공익으로 내보내주면 누가 군대에 남겠느냐"라는 말을 듣고 근무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단다.
이씨는 변호사와 행정사를 수소문했고 이들로부터 '육군은 4급을 받을시 그 질병이 허리와 관련이 있으면 사회복무요원 전환에 긍정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공군 규정도 아울러 살폈다.
공군 내부 규정 157조에 따르면, '신체등위가 5급에 이르지 아니한 사람은 신체적 질병으로 임무 수행이 곤란할 경우 심사를 거쳐 보충역 또는 제2국민역(현역 면제)에 편입할 수 있다'고 규정해뒀다. 허리 통증이 심해지던 와중에 4급 판정을 받은 이씨는 보충역 혹은 면제를 받을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차마 훈련을 열외할 수 없었던 이씨 이씨는 등급 판정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4월 초, 대대장에 이메일을 보냈다. "결례인 건 알지만, 주임원사를 거쳐도 의견이 반영되지 않아 메일을 드린다"라고 운을 뗀 이씨는 "병원의 진료 기록과 더불어 행정사의 답변도 있으니 (심사 청구에 대한) 부대의 방어적인 태도를 바꿔주길 바란다"라는 의견을 적었다.
기대와 달리, 대대장의 답은 명쾌하지 않았다. 대대장은 '수술 혹은 입원과 같은 확실한 자료가 없으면 심사에 탈락할 가능성이 있으니 군 병원에서 부적격을 입증할 자료를 더 얻자'는 입장을 내놨다고 한다.
이씨에 따르면, 대대장 간 이메일로 대화를 나눈 마지막 시점은 4월 13일. 보다 못한 이씨는 대대장을 직접 만나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근무를 계속 하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답했다. 결과는 가혹했다.
"이야기하던 중간에 간부 하나가 저를 끌고 가더군요. 데려가더니 '너는 왜 이리 싸가지가 없냐, 일개 병사가 대대장한테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는 게 되느냐'는 식의 말을 이어갔어요." 심사 청구를 놓고 평행선과 같은 논의가 이어지는 동안, 이씨는 훈련에 빠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지 않아도 병사들 사이에서 평이 안 좋은데, 훈련도 빠져버리면 병영생활을 이어나가기 너무 힘들 것 같아 이씨는 차선책으로 훈련에 참가하는 걸 택했다.
"매달 3~4시간 기지방호 훈련에 참여하다가, 검열 기간에 한 간부가 제게 '훈련에 참여하면 무리가 생길 수 있으니 잠시 휴가 나가 있으라'고 했어요. 또 '꿀 빨았다'는 이야기가 나올까봐 훈련에서 열외할 수 없었습니다."공군에 따르면 4월 10일 대대장과 이씨가 면담을 했고, 이 자리에서 이씨는 대대장에게 근무 열외를 요청했지만 부대 사정을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대장은 이씨에게 '근무표를 짜놓은 상황에서 한 사람만 빠져도 다른 병사는 잠을 못자고 근무를 해야 하니 4일 정도 더 근무를 서달라 요청했다'고 한다.
이씨는 "4일 근무하고 선임 병장의 요구로 근무를 더 했다"고 말했다. 열외를 요청한 지 일주일이 지난 4월 17일에 가서야 이씨는 경계 근무에서 벗어나 주임원사실로 차출될 수 있었다.
4월 중순까지 근무 서다 5월 말에 전역 판정, 그 사이 몸은...이씨는 끝내 통증이 가라앉지 않자 5월, 국군양주병원에 입원한다. 재검사를 했더니 5월 31일, 신체등급 5급을 받았다. 심사가 불필요한 '현역 부적격', 전역 대상이었다. 4월 초에 4급에서 5월 말에 5급을 받게 된 것이다.
"당시에 군의관이 '너는 볼 것도 없이 전역이다'라고 하더군요." 돌아보면 올 1월부터 심한 통증을 달고 다녔던 이씨는 눈칫밥 가운데 4월 중순까지 남들 하는 훈련을 같이 받으면서 경계근무를 계속 서야만 했다. 신체등급 5급 판정 이후 휴가를 통해 집에서 요양하긴 했지만, 행정 처리가 완료된 7월에 이씨는 한층 악화된 심사 결과를 받고서야 전역할 수 있었다.
적은 근무 인력과 여전한 병영 생활의 부조리, 부대의 늦은 조치가 연결되면서 이씨는 위기의 늪에 있었다. 경계근무 당시, 부대 차원에서 근무일수라도 줄여 이씨의 통증을 덜어줄 수 없었던 것도 그 맥락 안에서 비롯됐다.
공군 관계자는 지난 2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1월 중순부터 이씨가 민간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통증을 호소했지만 서서 일하는 헌병 경계 근무 특성상 통증이 일어난다고 무조건 열외할 경우 적은 인력으로 근무표를 짜기가 어려워진다"라면서 "4급 판정 뒤에도 이씨에게 부대 사정을 설명하고 근무를 요청하긴 했으나 근무를 선 이후엔 열외하도록 조치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씨 입장에서는, 결과적으로 몸이 망가지는 걸 기다린 뒤에야 전역할 수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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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망가진 뒤 전역한 공군 헌병... "수술해야 하는데도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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