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전자공학과 출신인 남일씨.
조호진
서울대 전자공학과 93학번 남일 학생의 꿈은 과학자였습니다. 그냥 과학자보다는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좋은 과학자가 되고 싶어 공대에 진학했습니다. 대학 2학년까지는 이 꿈을 잘 간직했는데 대학 3학년이던 1995년, 인생이 통째로 뒤바뀌는 사건을 만나면서 꿈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사건 발생 현장은 철거민 투쟁 현장이었습니다.
봉천동과 금호동 달동네 현장에선 철거 용역 깡패들이 행패를 부리고 있었고 철거 반대 투쟁을 하던 세입자 중에 한 사람이 분신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를 목격하기 전까지는 열심히만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는 나라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대학 2학년까지는 묵묵히 공부했습니다. 그 사건을 목격하지 않았다면 그의 꿈과 믿음은 깨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과학도의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무슨 세상이 이러지? 왜 이렇게 불공평하지? 가난한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아무도 보호하지 않지? 이런 세상을 외면하고 좋은 과학자가 될 수 있을까? 대학원에 가고 박사가 되는 게 나에게 무슨 의미지?1998년, 운동권 학생들이 현장을 거의 빠져나간 뒤였습니다. 그런데 운동에 나서지 않았고, 눈에도 잘 띄지도 않았고, 말도 별로 없던 그는 후배들과 함께 봉천동 달동네에 '다솜공부방'을 만들었습니다. 운동권 선배들은 공부방 선생이 아니라 공부방을 운영하겠다는 그에게 "무모한 일이니 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그는 거처를 아예 공부방으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