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0일 중대재해가 발생한 창원 STX조선해양을 찾았다.
윤성효
김영주 신임 노동부장관을 향한 기대감이 높다. 포괄임금제와 근로시간특례 제도를 손보겠다고 했다. 임금체납 시 재산 압류 등 강경조치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근로감독관 충원도 약속했다. 노동법 교육을 고등학교에 의무화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전부 두 손 들어 환영하고 싶은 말들이다.
근로자 대신 '노동자'
장관의 발언들 중 눈에 띄는 게 하나 더 있다. 감성적인 영역이다. 바로 근로자 대신 '노동자'라는 단어를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알려진 대로, '근로'라는 용어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부지런히 일한다'는 의미이다. 단어 뜻 자체가 장시간 노동을 암시한다. 사용자에 종속적이고 일함에서도 수동적인 느낌을 준다. 반면 '노동'이란 단어는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해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기울이는 행위'를 말한다. 근로에 비해 가치중립적인 데다 능동적 의미가 담겨있다.
김영주 장관은 취임 후 "앞으로도 '노동자'라는 표현을 계속 사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동부장관의 선포 이후 우리 법에서도 근로자란 어휘 대신 '노동자'란 단어를 사용하자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일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모든 법률에서 사용하는 '근로' 용어를 '노동'으로 일원화"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명칭 변경의 대상이 되는 법은 근로기준법,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 총 12건이다.
법률용어는 가치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당연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을 근로로 축소해 부를 이유가 없다. 더욱이 노동위원회나 고용노동부 등의 명칭에서 '노동'이라는 용어를 이미 사용하고 있다. '근로'란 단어와 혼재되어 혼란만 가중한다.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 노동하는 사람이 제값에 맞는 이름을 속히 회복하길 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도 노동자로 불리길근로자가 노동자로 불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노동자' 문제가 더 있다. 현실적인 영역이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노동자성이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대체로 노동자와 사용자의 중간영역에 속하는 노무제공자(worker)를 말한다. '특수고용직종사자'(유성재, 2003), 근로자유사종사자'(하경효, 2003), '특수업무종사자'(이철수, 2003), '독립노동자'(조경배, 2004), '계약근로형 노무 공급자'(최영호, 2002) 등 학자들에 따라 다른 용어로 부르기도 한다.
노동시장이 유연화되고 고용형태가 다변화되며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계약형태다. 노무제공자에게 주인의식(?)을 갖고 책임 있게 일하게 하면서도, 사용자로서의 노동법상 의무는 지지 않는 형식이다. 택배 기사,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골프장 캐디, 레미콘 지입차주 등이 이에 해당한다.
문제는 이들이 외연상 자영업자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적으로 열등한 지위에서(경제적 종속) 사용자의 지휘명령을 받고 일하면서(인적 종속) 도급, 위탁 등의 형식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이 경우 노동자가 '아니게 되므로' 노동법의 보호를 받기 힘들다. 실제로 이들은 일부가 적용받고 있는 산재보험 외에 노동관계법상의 보호를 모두 받지 못한다.
내년부터 고용보험 가입의 길이 열릴 것으로 보이나 아직은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보험설계사, 골프장캐디 등 9개 직종에 불과하다. 더욱이 산재, 고용보험 의무가입 대상이 된다고 해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이 명백한 아르바이트 노동자들도 일선에서 4대보험을 대부분 가입하지 않는 현실에서 이 같은 보험 가입 의무화가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4대보험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사용자의 일방적 계약해지로부터 무방비 상태와 다름없고(해고 등 제한은 근로기준법 제23조에서 규정하고 있음), 최저임금(최저임금법 제6조), 퇴직금(퇴직급여 보장법 제8조), 주휴수당(근로기준법 제55조), 연장·야간·휴일노동수당(동법 제56조), 연차유급휴가(동법 제60조), 노동조합 가입(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5조) 등 일반 노동자가 누릴 수 있는 대부분의 노동법상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는 데 있다.
자영업자의 형태를 띠고 있음에도 사용자 혹은 노무위탁자에 의해 실질적으로 종속돼 노무를 제공하며, 고용형식 외에 근무형태나 보수지급방법 등에서 차이가 없는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이하 '근기법')의 노동자 개념 안으로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근무형태나 보수지급방법 등에 차이가 있는 노무제공자는 별도의 입법을 통해 임금이나 해고 등에 있어 최소한의 보호를 국가가 해줘야 한다.
근기법 제2조 제1항은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라고 근로자 개념을 정의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도 오래전부터 일관되게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는 계약의 형식이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보다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에 따라 판단해야"(대판 1994.12.9., 94다22859 등)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결국 근기법상 노동자 판단은 '실질주의'가 핵심이다.
더 많은 '노동자'가 필요하다지난 5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노동3권 보장을 고용노동부에 권고한 바 있다. 2007년에 이어 이미 두 번째 권고이다. 당시 인권위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는 법률을 별도로 제정하거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개정해 이들을 법상 노동자에 포함시킬 것을 고용노동부에 주문했다.
한편 김해영 민주당 의원도 지난 7월 별도의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다. 더 많은 노무제공자가 노동자로 불리길 바라고 있다. 근로자를 노동자로 부르겠다고 다짐하고, 노동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약속했던 김영주 신임 고용노동부 장관의 대답은 어떤 것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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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장관이 지켜야 할 또 하나의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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