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1984>를 연상시키는 소설

[서평] 율리 체의 <어떤 소송>

등록 2017.09.05 08:11수정 2017.09.05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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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 체', 데뷔작부터 독일 서적상 및 에른스트 톨러 상 등 각종 문학상을 휩쓸며 탄탄한 커리어를 쌓아온 독일어권 작가의 이름이다. 그녀는 법조인이면서 동시에 참여적 지식인(유엔 등지에서 근무)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화려하고 다채로운 이력에 비해 그녀의 이름은 한국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2001년에 본격적으로 등단한 탓에 상대적으로 작품 활동량이 적은 편이고, 무엇보다 그녀를 대표할 만한 작품이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소송 Ein Prozess>
<어떤 소송 Ein Prozess>민음사
민음사에서 번역출판된 <어떤 소송>의 존재는 그런 면에서 가뭄의 단비같은 존재이다. 문학인으로서 율리 체의 기량이 한껏 드러나는 소설일 뿐 아니라, 그녀가 문학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사법적 신념이 작품 곳곳에 짙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한 작가의 모든 것을 맛보기에 부족함이 없는 대표작인 셈이다.

<가디언>지의 서평을 인용한 출판본 띠지의 말마따나 <어떤 소송>의 줄거리는 조지 오웰의 <1984>를 연상시킨다. 작중 미래의 세계는 '건강 지상주의'의 이념 아래에 운영되고 있다. 국가가 나서서 질병이 생기거나 퍼져나갈 수 있는 모든 환경을 통제하고 관리한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사생활, 혹은 자유의 권리가 후순위로 밀리는 것은 당연하다. 담배를 피는 행위, 건강을 관리하지 않는 행위, 그리고 허가되지 않은 음식을 먹는 행위 등은 모두 엄격한 법정 처벌의 대상이 된다. 모두가 공동체의 이익은 개인의 이익과 합치된다는 국가적 신념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주인공 미아 홀은 '자연과학자'로서 이 같은 체제에 자연스럽게 순응하고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녀와 매우 친밀한 관계에 있던 남동생이 살인자로 내몰려 국가에 연행되고, 결국 죽음을 택하는 일이 벌어지며 모든 것이 틀어진다. 그는 끝까지 결백을 주장했으나 국가의 'DNA 검사 시스템' 하에 아무런 변론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미아 홀은 체제에 대한 의심을 싹틔우게 되고, 한 변호사와의 만남을 계기로 싸움을 전개해 나간다.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국가의 통제와 공동체 제일주의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확실히 <어떤 소송>은 <1984>의 연장선에 있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1984>는 체제를 향한 투쟁과 패배의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내는 데에 중점을 둔 소설인 반면, 율리 체는 그것에 앞서 법정 투쟁과 언론 성명서 발표라는 형식을 빌려 국가주의(작중에서는 '건강 지상주의'의 시스템 또는 '오성운동')를 둘러싼 '토론의 장'을 독자들에게 선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실제 법정과 정치적 기구에서 일해온 작가만의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혹자는 소설의 내용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라거나 매끄럽지 못하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단순히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을 불러 일으키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우려와 성찰의 '지점들'을 제시한다는 점은 분명한 이 작품만의 매력이자 장점이다.

공동체와 개인의 이익은 언제나 합치할 수 있는가, 사법 체계의 완전성이란 실제로 가능한 것인가, 개인에게 허용되는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는 어느 범위까지인가 등 작가는 다양한 의문들을 끊임없이 제기한다.


오웰이 예견했던 디스토피아가 1984년에 가까워질수록, 아니 그 시절을 지나 이후의 미래로 나아갈수록 더욱 '현실적'인 것이 되었듯, 체의 예견도 마찬가지다. <어떤 소송>은 2009년경 초판이 나왔는데, 그로부터 채 10년이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녀가 그려냈던 생체 칩 및 바이오 통제 등은 기술적으로 SF보다는 현실에 근접한 이슈가 되어버렸다.

"위를 보라. 다시, 또다시, 항상 다시, 세기 초거나 세기말이거나 또는 세기 중엽이거나, 위를 보라."

작품 말미 등장하는 미아 홀의 외침은, <어떤 소송>이 다루고 있는 문제가 바로 우리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이슈임을 강하게 상기시킨다.

어떤 소송

율리 체 지음, 장수미 옮김,
민음사, 2013


#문학 #서평 #북리뷰 #율리체 #어떤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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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시민기자. 서울대 로스쿨 졸업. 다양한 이야기들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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