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반민특위’ 공연 개막식 날 노경식 선생님과 함께
정운현
때는 반민특위가 한창 활동하고 있던 1949년 여름 서울, 장소는 서울 중구 남대문로 반민특위 본부 등 시내 여러 곳이 등장한다. 등장인물은 이승만 대통령,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김태선 서울시경국장, 특위 조사관 등을 비롯해 대표적인 친일경찰인 노덕술, 최운하, 윤기병, 홍택희, 그리고 친일귀족 이기용, 춘원 이광수, 민족대표 33인 출신의 최린, 테러리스트 백민태 등이 등장한다. 하나 재미난 것은 중간 중간에 해설자 겸 반민특위를 취재하는 '정(鄭) 기자'라는 햇병아리 기자가 등장하였다.
8월 11일 개막식 날 대학로에 있는 공연장을 찾았다. 공연장 입구 로비에서 노 선생을 처음 만났는데 반갑게 맞아주셨다. 이윽고 시간이 돼 막이 올랐는데 무대는 반민특위 본부에서부터 공판정, 경기도 포천 광릉 숲, 파고다공원(탑골공원), 정 기자의 집, 남대문로 거리 등 종횡무진으로 넘나들었다. 재판과정에서 친일파들의 구구한 변명, 반민특위 반대 관제데모, 이승만과 김상덕 위원장 간의 논쟁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다. 한 시간여 동안 이어진 공연은 잦은 무대 변화로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반민특위는 그간 논문, 저서, 학술발표회 등 학술의 영역에 국한돼 다뤄져 왔다. 그러던 것이 이번에 처음으로 연극이라는 형태로 대중에게 다가간 것이 나로선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최근 들어 근현대사물이 영화로 만들어져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역사가 역사책 속에만 갇혀 있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우리민족의 통한인 반민특위를 대중적 공감대로 풀어내 장편소설이나 영화로도 접할 날을 기대해 본다.
6.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일가 3대의 비극사(2017.8)반민특위 관계자 인터뷰를 하면서 만난 6인 가운데 생존자는 김정육(82) 선생뿐이다. 그때 쌓은 인연으로 나는 김 선생과 가끔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냈다. 그러던 중 앞에서 소개한 '연극 반민특위' 건으로 지난 7월말 모처럼 전화를 드렸다. 연극 개막식 때 김 선생님을 초대하면 어떻겠느냐고 노경식 작가에게 말씀드렸더니 좋은 생각이라고 하시기에 김 선생님의 일정이 어떠신지 일단 내가 먼저 알아보기로 했다.
전화 속 목소리에서부터 왠지 불길했다. 힘이 없고 참담한 분위기였다. 김 선생님께 연극 얘기를 들려드리고 참석가능 여부를 여쭈었더니 어렵다고 하셨다. 작년에 심장수술을 한 이후 건강이 좋지 않은 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드님이 대장암이 재발돼 심각한 상황이라고 하셨다. 김 선생님의 아드님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의 유일한 손자다. 3대에 걸쳐 이 집안에 비극이 이어지고 있다는 현실을 목도하게 되자 나는 목이 메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