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투사 백기완 선생님은 '연분홍 치마'로 시작하는 <봄날은 간다>를 즐겨 부른다.
정택용
백기완, 문정현 두 어른이 즐겨 부르던 노래는 한이 서려 있고, 민중의 아픔이 녹아있다. 노래 부르기를 거절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민중의 삶을 고스란히 몸으로 담아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두 어른의 대표곡은 또 있다. 두 분이 명연설가이기에 나온 노래들이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백기완 선생님이 1980년 서대문 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때 지은 시 〈묏비나리 -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의 일부이기도 하다. 지난 1980년 5월 27일, 광주 5.18민주화운동 중 전라남도 도청을 점거하다가 계엄군에게 사살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1979년 노동현장에서 '들불야학'을 운영하다가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기순. 두 사람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뮤지컬 <넋풀이 -빛의 결혼식>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곡이다. 그 후 이 노래는 지금까지 노동운동의 대표곡으로 불린다.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 복직하는 것이 평화/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이/ 서식처 잃지 않는 것이 평화/ 가고 싶은 곳을 장애인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성매매 성폭력 성차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군대와 전쟁이 없는 세상/ 신나게 노래 부르는 것이 평화/ 배고픔이 없는 세상/ 서러움이 없는 세상/ 쫓겨나지 않는 세상/ 군림하지 않는 세상노래 <평화>의 가사다.
2004년 5월 29일 평택에서 열린 집회에서 문정현 신부님은 '평화가 무엇이냐'라는 주제로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을 토대로 노래를 만들었다. 평택 미군부대 이전 반대 투쟁을 하면서 널리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지금은 평화를 이야기하는 모든 곳에서 부른다.
두 어른은 닮은 점이 많다. 내가 아는 두 어른은 노래를 잘한다. 내가 아는 두 어른은 눈물이 많다. 내가 아는 두 어른은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가끔은 지팡이가 무기로 쓰이기도 한다. 내가 아는 두 어른은 늘 투쟁의 현장에 계신다. 두 어른은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내어 주셨다.
세상에 한 번도 무릎을 꿇지 않으신 백기완 선생님은 매일 아침 두 무릎을 꿇고 앉아 비정규 노동자들을 위해 붓글씨를 쓰셨다. 세상에 상처받은 곳에 약을 발라주시던 문정현 신부님은 자신의 손가락 살이 떨어져 나간 것도 모르고 매일 아침 서각을 파셨다. 그렇게 만들어 주신 것들을 우리는 덥석 받아 들었다. 그리고 이제 또 손을 내민다. 두 어른은 다 가져가라고 하신다.
두 할아버지의 이야기, 책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