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 12. 27. 거제포로수용소 전경, 1950년 11월 27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한국전쟁 중 인민군 15만여 명, 중국군 2만여 명 최대 17만 3천여 명의 포로를 수용했던 곳이다.
NARA
나이 어린 인민군 포로'한국전쟁, 그 지울 수 없는 이미지 복원' 기획은 지난 6월 12일부터 오는 9월 21일까지 100일 동안 모두 30회로 연재하기로 편집부와 약속했다. 이제 이 연재는 종착역을 앞두고 있다. 이번 회에서는 이 사진들을 입수한 이야기와 나이 어린 인민군 포로 이야기로 시작하고자 한다.
2004년 1월 31일, 나는 백범 암살범 안두희를 10여 년간 끈질기게 추적한 권중희 선생과 백범 암살 진상의 자그마한 언턱거리라도 찾아보고자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갔다. 우리가 먼 그곳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오마이뉴스> 독자들이 열화와 같이 성금을 보내주셨기 때문이었다. 그때 우리는 미주동포들의 뜨거운 환영과 그분들의 자원봉사로 'Kim goo' 팀을 꾸려 '솔밭에서 바늘을 찾는 심정'으로 NARA에서 문서를 찾는 일을 시작했다.
영어에 매우 서툰 나는 'Kim goo' 팀의 C파트로 사진을 검색하면서 그 가운데 우리 현대사에 긴요할 장면들은 스캔했다. 그때 나를 도와주신 분은 재미동포 박유종 선생으로 그분은 임시정부 백암 박은식 대통령의 막내손자였다. 그분 때문에 이후로도 나는 1800여 컷의 사진을 입수할 수 있었다.
2004년 2월 17일, NARA 5층 사진자료실에서 박 선생은 그곳 아키비스트(Archivist)로부터 막 전달받은 한 문서 상자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내게 건넸다. 그런 다음 사진 뒷면의 영문 설명을 번역해 내게 들려줬다.
"가장 나이 어린 포로로 이름은 김해심, 통역은 이수경이라고 기록됐네요. 포로 심문관은 미8군 서전트(Sergent, 하사관)라고만 표기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