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거의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인 터키에선 곳곳에서 모스크를 볼 수 있다.
류태규 제공
이스탄불 예술고등학교 학생들과 친구가 되다기대 없이 올라탄 기차. 그런데 재밌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차에 이스탄불 예술고등학교에서 회화를 공부하는 열일곱, 열여덟 예쁘장한 여고생들이 40명이나 탔던 것.
'달리는 열차 안에서 승객들 모습 크로키 하기' 따위의 특이한 사생대회를 하는 모양인데, 꽤 유명한 학교인지 방송국에서 취재까지 나와 있었다. 녹화용 TV 카메라가 여러 대 보였다. 기차에 오른 아이들 중 맹랑한 꼬마 아가씨 둘(튜바와 제랄드)이 다가와 망설임 없이 물었다.
"어디서 왔어요?" "한국에서 왔는데." "우리랑 함께 앉아서 갈래요?" 그 질문에 보통의 40대 아저씨라면 당연히 이렇게 답해야 옳다.
"아니야. 나는 여기서 경치를 보며 가는 게 편해. 너희는 가서 그림 그리렴."그런데, 기자는 보통이나 보편을 거부하는 성정. 해서 이렇게 대답했다.
"Sure. Why not?"이런 날이 아니면 언제 친구 딸 또래의 아이들과 이야기를 해볼 것인가. 둘은 복잡한 기차 안에서 완성한 그림들을 보여준다. 거기엔 내 얼굴도 있었다.
그림의 미적 완성도와 솜씨를 떠나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방인에 대한 따스한 관심이 담겨 있는 그림이니 말이다. '페이스북 친구'가 되자며 이메일 주소를 알려준 튜바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는 제랄드.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해줬다.
'오냐, 친구 하자. 뭐 어떠냐. 우정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라고.' 그날 이후 둘은 페이스북 친구가 됐고,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여전히 나의 가장 어린 친구들로 남아 있다. 10년 후쯤 다시 이스탄불을 찾아 재회할 땐 튜바와 제랄드 모두 렘브란트와 살바도르 달리를 뛰어넘는 멋진 화가가 되어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