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불편하게..." 청년들이 고향 찾지 않는 속사정

[2017 추석 열전] 가족간의 다툼, 알바·취업준비 등으로 인해 고향 찾지 않아

등록 2017.10.02 11:51수정 2017.10.0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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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성길이 '남의 이야기'인 청년들도 있다.
귀성길이 '남의 이야기'인 청년들도 있다.연합뉴스

추석 연휴가 시작됐다. 9월 29일부터 10월 9일까지 이어지는 무려 10일 간의 최장 연휴이다. 어떤 이들은 고향을 찾고, 어떤 이들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많은 이들이 오랜 시간을 투자해 차, 기차 등을 타고 각자의 지역을 향해 떠난다. 명절이면 고속도로는 마비되곤 한다.

명절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명절 음식을 나눠 먹고 대화를 나누고, 오랜만에 보는 가족들과 반갑게 인사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그러나 이 자연스러운 풍경 속에 들어오지 않는 이들이 있다.

직장인 윤민수씨(27·남·가명)는 이번 명절에 고향을 찾지 않는다. "(고향을 찾지 않는지) 꽤 됐어요. 예전에는 고향에 사는 친척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따로 흩어져 살고, 굳이 서로 먼 길을 돌아 만날 필요가 없어졌달까요. 가족들끼리의 불화도 있었죠." 비단 윤씨의 사례만은 아니다. 취업준비생 이정우씨(24·남·가명) 역시 가족 간의 고향을 찾지 않는다.

"가족 간의 다툼이 있었어요. 부모님이 나이가 어렸다거나,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면 그래도 만나게 됐겠지만 이제는 굳이 불편하게 서로 만날 이유가 없어졌죠."

윤씨는 이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라 설명한다. 가족들 간의 관계가 멀어진 것이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나타난, 당연한 일이라는 이야기다.

"나쁘게 볼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자연스러운 변화죠. 이전 같으면 같은 동네에서 평생 볼 사이였겠지만, 지금은 안 보고도 살 수 있게 된 거죠. 안 맞는 사람들끼리 굳이 힘들게 볼 필요 있을까요?"

 노량진의 한 경찰 입시학원의 풍경. 추석에도 노량진은 쉬지 않는다.
노량진의 한 경찰 입시학원의 풍경. 추석에도 노량진은 쉬지 않는다.연합뉴스

고향을 찾지 않는 이들만 있는 건 아니다. 고향을 찾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정유민씨(21·여·가명)는 일 때문에 명절에 고향을 찾는 일을 포기했다. "명절이라고 아르바이트를 빼기가 어려워요. 제일 붐빌 때거든요." 그는 주변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돈을 벌기 위해서 명절을 고향에서 보내지 않는 친구들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일을 하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요. 명절에는 좀 힘든 일 같은 경우는 시급이 조금 더 높거든요.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차비도 그렇고 못 가는 친구도 좀 있고, 아무래도 경제적인 이유가 제일 크지 않을까요?"

친척들의 시선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취업준비생 박민지씨(26·여·가명) 역시 그렇다. "친척들 보기가 불편해요. 매번 만나는 사람은 있냐, 살은 언제 뺄 거냐, 취업은 언제 할 거냐, 이런 이야기들이요. 물론 절 걱정해서 해주시는 말이겠지만 불편하고 부담스럽죠. 그냥 남아서 취업준비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전통주 선물세트 매대 사진. 명절 알바는 시급이 높다.
전통주 선물세트 매대 사진. 명절 알바는 시급이 높다.남기인

명절은 더 이상 가족들이 전부 모이는 날이 아니다. 각자의 이유로 고향을 찾지 않거나, 찾을 수 없게 된 청년들이 주변에 흔히 보인다. 이런 경향이 지금의 청년들이 중·장년 세대가 되었을 때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윤씨의 말대로 시간이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로 보인다. 가족관계는 점점 파편화된다. 가족들 간의 연결고리와 구심점 역시 줄어들고 있다.이제 몇십 년 후면, 더 이상 귀경길 정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게 될는지도 모른다.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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