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 4월 3일 오후 서울 대치동 이명박 전 대통령 사무실을 찾아 이 전 대통령과 대화를 나눴다.
연합뉴스
"BBK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이명박과 사건 은폐, 축소에 가담했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나경원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검찰 관련자 및 연루된 모든 관련자들을 재조사하여 진정한 적폐청산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철저히 조사하여 죄를 짓고도, 숨기고도 잘 살게 내버려두는 현정부가 아님을 국민들께 증명시켜주시기를 간곡히 바라며 청원합니다!!! 나라를 나라답게!!!!!"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및 제안'란에 지난 1일 올라온 'BBK 이명박 재조사 바랍니다'란 게시글 내용이다. 오는 31일까지 진행되는 이 청원은 9일 오후 1시 현재 1만477명이 동의했고,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 중이다.
수십만의 폭발적인 반응은 아직 아니다. 하지만 최근 적폐청산 TF 활동이나 더불어민주당에서 공개한 문건 내용 등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귀결되는 각종 의혹에 대한 일부 국민들의 반향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라 할 만하다.
이런 움직임은 또 있다. 지난 10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소셜미디어 상에서 급속도로 번졌던 '#그런데최순실은' 해시태그 달기운동을 연상시키는 '이명박구속' 오행시와 해시태그 릴레이다. 지난 3일 이후 페이스북 상에서 번지고 있는 이 릴레이를 최초 제안한 것은 기타리스트이자 제주도에서 한 라이브 카페를 운영 중인 송철민씨로 알려졌다.
이)나라에 제대로 살기 위하여명)백하게 보아야 하는 문제가 있다박)근혜 뒤에는 이명박 있다구)린내 풍기는 적폐의 무리가 있다속)속들이 썩은 이 나라 치유의 시작은 이명박 구속!이ㅡ이번에 구속수사하라명ㅡ명바기는 이제 15범이네박ㅡ박근혜는 무기징역구ㅡ구속은 추석 후속ㅡ속히 이뤄져야한다송씨는 최근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해시태그 릴레이를 시작한 의도에 대해 "현직 대통령(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하고 구속한 것이 촛불이었고, 방해하는 쓰레기 적폐 언론과 끝까지 싸우며 촛불을 사르고 끝까지 끌고 간 것은 페이스북 등의 1인 SNS 레지스탕스였다"면서 "이번 현상을 보니 도구만 바뀌었지 적폐청산이 될 때까지는 촛불 혁명은 진행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MB 수사', 'MB 조사' 열기에 불을 당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명박 전 대통령 자신이라 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직전이던 지난달 28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추석 인사 글이야말로 국민들의 관심을 MB 본인으로 향하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BBK 재수사', '이명박 구속' 시민들 vs. 적폐청산 흔들기, MB와 'MB맨'들
"안보가 엄중하고 민생 경제가 어려워 살기 힘든 시기에 전전 정부를 둘러싸고 적폐청산이라는 미명 하에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퇴행적 시도는 국익을 해칠 뿐 아니라 결국 성공하지도 못합니다. 때가 되면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퇴행적 시도'란 표현을 유행시킨 장본인이 되어 버린 MB. 그의 추석 인사 글은 추석 연휴 막바지인 8일 오후 3시 현재 6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고, 900여회 넘게 공유되며 이른바 추석 연휴 소셜미디어 사용자들의 '성지 순례'로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다. "적폐청산"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때가 되면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릴 기회" 운운하며 자신에게 향하는 의혹의 방향을 돌려보려던 시도가 오히려 역풍을 맞은 꼴이랄까.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시원하게 포문을 열어젖히자, 과거 'MB'맨들과 MB와 정치적 DNA를 공유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말문이 트였다. 지난달 30일, 4대강 전도사이자 MB 정부에서 특임장관을 지냈던 이재오 늘푸른한국당 대표는 본인의 페이스북에 "이 모든 책임을 제가 지고 감옥이라도 가겠습니다"라는 다짐이 포함된 장문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에 앞서 대표적인 'MB맨'이자 MB 정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수장을 오래 지냈던 유인촌 전 장관은 'MB 블랙리스트' 문제가 불거지자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런 리스트는 없었다"며 발뺌을 한 바 있다.
현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을 '노무현 vs. 이명박' 프레임으로 전환시키면서 그 의의를 훼손시키려는 전략도 끈질기게 벌어지는 중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막말을 일삼은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은 이미 지난달 말 유족이 명예 훼손으로 고소했고, 검찰이 이미 수사에 착수했다. 정진석 의원은 MB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 출신이다. MB가 대선후보였을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이었던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까지 나선 걸 보면, 이들이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다.
"문 대통령이 진정 달빛기도의 마음이라면 이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MB의 정치보복 때문이라는 졸렬한 의식을 버려라. 노무현 대통령은 그 즈음 '저를 잊어달라' 하였다. 왜 그랬겠느냐? 적폐청산의 정치보복이 진행될수록 노통을 또 한번 욕보이게 하는 일들이 일어날 것이고 그것은 바로 현정권이 자초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추석 연휴였던 지난 2일, 나경원 의원이 올린 장문의 페이스북 글은 '노무현 vs. 이명박' 프레임을 확대재생산하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졸렬한'이란 표현까지 서슴지 않는 직설화법에 가까운 토로(?)였다. 일각에선 이러한 '노무현 vs. 이명박' 프레임이야말로 MB 공범자들의 '도둑이 제 발 저린' 안하무인격의 정치 공세라는 해석이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