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2. 25. 맥아더기념관 자료실 앞에서 고 이도영(오른쪽) 박사와 필자.
이도영
그날 핸들을 잡은 이 박사는 맥아더기념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오랜 침묵을 깨고자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는 그 숙군 소용돌이 속에서도 동지의 조직도를 밀고한 뒤 '혼자 살아난 사람'이 있었다는 얘기를 했다. 그 순간 나는 젊은 날 깊은 밤, 아버지에게 들은 한 고향 선배의 천기누설과 같은 행적이 떠올랐는데 바로 그 얘기였다.
그 파란만장 기구한 삶의 이야기는 짧은 이 글에 어찌 다 담을 수 있겠는가. 그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른 형식의 글로 쓰기로 하고, 대신 조갑제 기자가 쓴 한 대목을 인용하는 것으로 독자의 궁금증을 일부나마 풀어드린다.
"숙군(肅軍) 수사 팀에 구속된 박정희 소령이 그 절박한 상황에서 (동거녀) 이현란(李賢蘭)에게 쪽지를 써 고백한 내용 - '현란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도망갈 수 있었는데도 가지 않았다'는 것은 아마도 진실일 것이다. 여덟 살 아래인 그녀에 대한 박정희의 집착은 대단했다.
만약 이때 이현란이라는 여인이 없었고, 박정희가 달아났다면 그의 생애는 전혀 다른 궤적을 그렸을 것이다. 잡혀와 처형되었든지, 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되었든지, 월북(越北)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형선고를 면하고 감옥살이를 했다면 6.25 동란이 터지고 정부가 후퇴할 때 다른 좌익수와 함께 '처리'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어느쪽이든 '대통령 박정희'는 없었을 것이다." -조갑제 지음 조선일보사 발행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2001년 초판 10쇄 제2권 220쪽
천망(天網, 하늘의 그물)
여기까지 이 글을 쓰는데 갑자기 '천망(天網)', '업보(業報)',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떠올랐다. 뒤에 두 말은 대부분 독자들이 알 것 같아 첫째 말만 몇 자 군더더기를 덧붙인다. 노자의 <도덕경>에 다음의 글이 있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 성글어 보여도 빠져나가지 못한다(天網恢恢 疎而不失)."
또 "하늘의 그물은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이 만들어낸 법의 그물은 눈에 보인다. 그래서 사람이 만든 법의 그물망을 잘 피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의 죄는 언젠가는 하늘의 그물에 걸리게 된다"고 한다.
최근 보도되는 여러 흉흉한 일들의 기사는 위 세 말과 연관되는 듯하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나 자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남의 눈에 티끌은 잘 보면서도 제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쩌면 우리(일부를 제외하고)는 어떤 면에서 공범자일 수도 있다. 그의 시책에 부화뇌동하거나 그 장단에 맞춰 적극 춤추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지지 투표를 했거나 또는 수수방관하거나 침묵했으니까.
우리 모두 역사와 민족 앞에서 크게 참회하고 자기의 잘못을 고치지 않는 한, 분단 극복도, 조국 평화통일도, 우리 사회와 가정의 평화도 이루기 힘들 것이다.
"주여! 어리석은 우리 인간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들이 자신의 잘못을 뼈아프게 깨달아 스스로 깊이 참회하게 하소서... 나무상주시방불 나무상주시방법 나무상주시방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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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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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인이 없었다면 '대통령 박정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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